타자의삶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 길 中

ToBeIsToChange 2006. 6. 19. 19:17


내일은 아예 생각하지 않는 편이 낫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오늘 이 시간, 지금 이 순간만을 축복으로 여기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그런데 사랑한다는 것은 과거에도 불가능했고, 또 먼 미래에도 불가능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오직 현재, 바로 지금 이 순간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들이 저지른 행위의 결과를 정작 우리들 자신은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저지른 행위의 결과는 무한한 세계와 무한한 시간 속에 무한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없다라고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변명하곤 한다. 하지만 삶의 근본이 되는 내적 활동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예를 들어 당신이 감옥에 갇혔을지라도, 병에 걸렸을지라도, 모든 활동을 금지했을지라도, 혹은 수치를 당하며 박해를 당할지라도 당신 내면은 끊임없이 사고하며, 끊임없이 감정을 생산하고 있다. 즉 당신은 머리속으로 타인을 책망하거나 비난하거나 원망하거나 증오할 수 있으며, 또 마음 속으로 이들 감정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활의 모든 순간은 각자의 것이며, 누구도 당신에게서 당신의 생활을 빼앗을 수 없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쓸데 없는 짓이다. 오직 지금 이순간 자신과 타인의 생활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는 마태복음 6장 34절 말씀은 위대한 진리이다.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절대로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영역이다.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이다. 나는 이 짧은 금언을 되새길 때마다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언젠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만일 우리가 이 자명한 진리를 잊는다면, 우리의 생활은 완전히 파괴될 수 밖에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삼십 분 후 자신이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그 삼십분동안 그는 과연 무엇을 할까? 어리 석은 짓, 쓸데없는 짓, 범죄를 저지를까 아니면 이 마지막 삼십 분 동안 지나간 삶과 앞으로 마주치게 될 미지의 세계를 궁구하게 될까? 많은 사람들이 이 어리석은 질문의 답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삼십 분이 아닌 오십년 혹은 칠십년이라고 가정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대답을 선택하고 있다.

 

시간은 우리의 뒤와 앞에 존재할 뿐 우리 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이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다 보면 지금 가장 중요한 것들, 즉 현재의 생활을 상실하게 된다.

 


동물과 달리 과거를 기억하거나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이 인간에게 허락된 까닭은 과거 또는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현재의 모습이 보다 올바르게 결정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지나간 과거와 다가올 미래에 대한 고찰을 통해 인간은 현재 자신의 행위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 이것은 과거를 슬퍼하거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기뻐하라! 인생에 부여된 사명은 기쁨이다. 하늘을 향해, 저 태양을 향해, 멀리 떨어진 행성 한 가운데서 빛나는 별을 향해, 풀을 향해, 나무를 향해, 동물을 향해, 인간을 향해 기쁨의 노래를 바쳐라. 이 기쁨이 사라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만에 하나 너의 인생에서 이같은 기쁨이 사라졌다면 그것은 네가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결코 재미로 즐기는 놀이가 아니고, 나의 의지를 삶을 버릴 권리는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단지 시간의 길이로 인생을 측정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는 오직 순간으로 나열될 뿐이다. 그리고 이 한순간에 우리의 모든 생활이 담겨있다. 그러므로 이 한순간에 우리는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

 

시간이 흐른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분명 잘못된 생각이다. 흐르는 것은 우리들 자신이지 결코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갈 때 마치 흐르는 것은 물결이며, 우리는 그저 가만히 멈춰있는 것처럼 느낀다. 시간도 이와 비슷하다.

 

물레방아는 곡식을 쌓을 때 필요하다. 인생에 주어진 시간은 삶을 훌륭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

 

만일 오늘 그 일을 해야 한다면, 그것을 절대로 미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 일을 언제 끝마칠 것인지 죽음을 고려하지 않기 때무이다. 죽음은 누구도 무엇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일이다.

 

인생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노동에서 방출된 부자들의 생활은 한마디로 광기로 뒤덮인 얼룩이다. 인간은 일하지 않으면, 그리고 모든 인간의 삶에 보편적으로 기록된 규칙을 동일하게 수행하지 않으면 결국 광기에 휩쓸리게 된다. 이런 사람들의 육체에서는 지나치게 많이 먹은 가축들, 예를 들어 말이나 개, 돼지의 몸뚱어리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똑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즉 그들은 왜 이렇게 자신이 날뛰는 지 모른 채 하루 종일 거리를 헤매며 돌아다니는 것이다.

 

성공을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조건은 인내다. 성공의 가장 큰 장애는 조급함이다.

 

부자는 단 한순간도 편안한 마음으로 지낼 수 없다. 항상 자신의 재산이 염려되고, 재산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 큰 마음고생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많은 부자들이 타락과 낭비와 허영에 빠져 삶을 포기하곤 한다. 그나마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은 자들도 상당수는 소수의 인간사회, 즉 자신과 똑같은 상류층에서만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세상물정 모르는 한심스러운 작자가 되어버린다. 부자는 다른 사람들, 그 중에서도 가난한 사람들과 우정을 나눌 수 없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친구로 둔다는 것은 자신의 죄를 법정에서 자백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좋은 일은 언제나 갑자기 찾아온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오히려 나빠지는 경우가 더 많다.

 

많은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황금을 통해 얼마나 많은 행복을 일었는가를 깨달은 후 황금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처음 길을 떠났을 때보다 훨씬 더 괴로운 고행을 선택하게 된다.

 

나방이 불을 향해 달려드는 것은 날개가 타는 고통을 미쳐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낚시바늘을 삼키는 것은 그 때문에 자기 몸이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육욕에 의해 삶이 파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자학과 같은 쾌락에 일생을 허비한다.

 

필요없는 것을 버릴 때 삶은 자유롭다. 욕망이 적으면 적을 수록 행복하다. 이는 오래된 명언처럼 들리지만, 결코 쉽게 실천할 수 없고 인정받기 힘든 진리이기도 하다.

 

교만한 학자들은 라틴어의 복잡한 문장과 단어를 함부로 사용해 매우 단순한 의미를 난해하게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할 점은 난해함이 총명함의 다른 이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