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Lewis

C.S.Lewis - 스크루테이프 편지 中

ToBeIsToChange 2006. 6. 2.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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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웜우드에게

지난번 편지에, 환자가 회심한 이후 한 교회만 계속 나가고 있는데 전적으로 만족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무심코 썼더구나. 교회 출석이라는 이 증세가 나아지지 않을 시에는, 차선책으로 자기한테 ‘맞는 교회’를 찾아 주변을 헤매 다니다가 결국은 교회 감별사 내지 감정사가 되게 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그러니 제발 분발해서 이 바보를 최대한 빨리 주변 교회들로 돌려버리라구.


나도 사무실에서 환자 집 부근에 있는 교회를 두 군데 찾아 보았는데, 두 교회 다 나름대로 장점이 있더라. 첫 번째 교회 목사는 의심많고 완고할 것 같은 교인들에게 좀더 쉽게 믿음을 전해 보겠다는 의욕 때문에 오랜 세월 믿음에 물을 타는 일에 매진해 온 사람인데, 그러다 보니 요즘은 목사가 교인의 믿음 없음에 충격을 받는게 아니라, 외려 교인들이 목사의 믿음 없음에 충격받는 처지가 되어 버렸지. 이 목사 덕분에 참 여러 영혼이 기독교를 떠났다. 예배를 인도하는 방식도 맘에 들어. 평신도들한테 ‘어려운’ 거라면 무조건 들어내다 보니, 성구집도 지정된 시편도 다 없어져 버리고 이제는 저도 모르는 새에 제 마음에 드는 시편 열다섯 편과 성서일과 스무 개만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끝도 없이 반복하게 되었지. 이로써 우리는 목사나 그의 양떼에게 친숙치 않은 진리가 성경을 통해 전달될 위험을 덜었다.


두 번째 교회는 스파이크 목사가 담당하고 있다. 그 목사의 견해는 너무나 광범위해서 종종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지. 하루는 공산주의에 가까운 말을 하는가 하면, 다음 날엔 신정주의적 파시즘에서 멀지 않은 말을 해 대니 왜 안 헷갈리겠어. 하루는 스콜라 철학자가 되었다가 다음 날엔 인간 이성을 통째로 부인해 버리기도 하고, 하루는 정치에 푹 빠졌다가 다음날엔 세상 나라는 똑같이 심판을 면할 길이 없다고 단언하거든. 우리 눈에야 이런 상반된 생각의 연결 고리가 바로 증오심이라는 사실이 훤히 보이지. 스파이크 목사는 부모와 친구들이 놀라고 슬퍼하고 당황스러워하고 수치심을 느끼게끔 잘 계산해 놓은 말이 아닌 한, 설교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인간이다. 그 목사한테는 앞날이 창창한 부정직의 낌새도 있다. 우리는 요즘 “최근에 메리튼인가 누군가 하는 사람 책에서 읽은 것 같은 데”라고 해야 할 말을 “교회의 가르침은”이라고 말하도록 가르치고 있는 중이야. 하지만 치명적인 결함도 한 가지 있다. 그의 믿음만큼은 진짜라는 것. 바로 이점이 모든 걸 망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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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웜우드에게

지난번 편지에서 탐식을 인간의 영혼을 낚는 수단으로 탐탁지 않게 여겼던데, 그건 오로지 네가 무식한 탓이다. 지난 일백 년 간 우리가 이룬 가장 위대한 성과는 바로 이 주제에 관해 인간의 양심을 완전히 마비시켰다는 거라구. 이제는 유럽 전체를 위아래로 아무리 훑어 보아도 탐식에 대해 설교한다거나 탐식 때문에 가책을 느끼는 경우를 찾아 보기 힘들지. 이게 다, 많이 먹는 데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맛있는 걸 찾아먹는 데 욕심을 부리도록 총력을 집중한 결과이다.


환자의 어머니가 그 좋은 본보기라는 걸 나는 기록에서 찾아보고 알았다만, 너는 익히 잘 알고 있었을 거라 믿는다. 자신이 평생 이런 관능의 노예로 살아왔다는 걸 알면, 정말 놀라 자빠질걸. 지금은 단지 먹는 양이 적다는 사실 때문에 눈치를 못 채고 있지. 하지만 인간의 위장과 입맛을 이용해서 까다롭고 참을성 없고 무자비하고 이기적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양이야 얼마를 먹든 무슨 상관이냐?


다른 사람을 번거롭게 하면서까지 원하는 걸 먹으려는 결심이야말로 탐식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제 입맛을 만족시키고 있는 그 순간에도 스스로 절제를 실천하고 있다고 굳게 믿는 다구. 이 노인네는 손님들이 북적거리는 식당에 가서도 과로에 지친 여종업원이 날라다 준 접시를 보자마자 짤막한 비명을 지른 단다. “어머나, 이건 많아도 너무 많군요! 도로 가져가서 반의 반만 담아다 주세요!” 혹시 누가 한마디라도 하면 쓸데없는 음식낭비를 막느라 그런다고 대꾸하겠지. 어떻게 접근하든지 간에 중요한 점은, 제가 좋아하는 어떤 것(생선이든, 홍차든, 담배이든)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짜증을 부리게’ 해야 한다는 거야. 그러면 그의 자비도, 정의도, 순종도 모조리 네 손 안에 들어올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