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Lewis

C.S.Lewis - 네 가지 사랑 서평

ToBeIsToChange 2006. 6. 16. 20:38
작성자: 정지영/IVP간사
 


"사랑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 C. S. 루이스의 《네 가지 사랑》을 읽고

1960년,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도 결혼을 통해 조이에 대한 사랑을 확신했던 루이스가 결국 하늘의 ‘잔인한 자비’로 먼저 아내를 보내는 이별을 감내해야 한 그 해, 《네 가지 사랑》은 출간되었다.


찰스 윌리엄스에 의하면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을 계시하고 있지만, 타락한 세상의 이미지에서 추론할 수 있는 통찰력이란 부분적이고 하찮은 것이며, 그러한 통찰력에 의한 결론 또한 신뢰할 수 없다고 한다. 인간의 사랑이 그것의 가장 명백한 예다. 인간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키고는 있지만 인간의 사랑이 곧 하나님의 사랑은 아니다. 루이스는 절친한 친구 윌리엄스의 ‘이미지의 긍정과 부정’ 원리와 맥락이 맞닿아 있는 접근을 통해 사랑에 대한 일반 통념에 도전하는 것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헬라어 어원을 중심으로 기술되는 책 전체에서 오컴의 면도칼 같은 예리함과 논리적 치밀함, 번뜩이는 통찰력과 함께 우리와 시·공간을 공유했던 사람인 것같이 독자들의 이해를 생생하게 만드는 루이스의 수사력은 새로운 번역본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던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애정affection으로서의 스토르게Storge, 우정으로서의 필리아Philia, 육체적 사랑인 비너스Venus와 구별되지만 신처럼 군림하려는 에로스Eros, 이 모든 사랑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초월적인 신적 자비로서의 아가페Agape의 의미와 그것이 우리 삶에 주는 의미를 설명한다. 그러나 루이스는 애정, 우정, 에로스는 수준 낮은 인간의 사랑이고, 신적 사랑으로서의 아가페만이, 그것도 구원론적인 의미만 있는 자비만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뻔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인간의, 삶의 본질에 해당하는 명제적 문제이기 전에 루이스 자신의 실존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산책, 독서, 파이프 담배(어떤 사람에게는 괴로움이지겠만)에 대한 애정(스토르게), 말년에 만난 연인과의 사랑(에로스), J. R. R. 톨킨·찰스 윌리엄스 등과의 우정(필리아), 이 모든 사랑의 원형이며, 방향을 제시할 뿐 아니라 자신의 세계관을 바꿔 놓은 하나님의 자비(아가페)의 경험들이 사랑이라는 흔한 주제를 이렇듯 분명하고 설득력 있게 만들었을 것이라 독자는 추측하게 된다.


1960년 본서가 출간된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났고 같은 주제를 다뤘던 책들이 출간되었지만 신학적·철학적 면에서나 영성의 면에서 루이스의 책만큼 균형 잡힌 에세이는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관련 주제의 주목할 만한 책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는 것에서 이 책의 가치가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할 수 없다면 하나님의 부재를 연습하는 것도 어느 정도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완전히 깨어난 사람들이 전해 주는 소식을 듣고자 한다면, 저보다 더 나은 이들을 찾아나서야 할 것”이라는 루이스의 겸손한 결론대로 어떤 사람들에겐 더 나은 책을 찾아 나서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본서는 그 탐구를 위한 훌륭한 출발선을 제공해 줄 뿐 아니라 탐구하는 여행길 내내 안내서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사랑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과의 사랑은 의미 없는 것이며 천국만이 우리 집이라는 편협한 구원관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사랑(애정, 우정, 에로스)은 땅을 삶의 터전으로 받은 우리의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자비)은 그 사랑들과 우리 모두를 구원할 것이다.

*주의 : 제목에 현혹되어 차례를 무시하거나 5장부터 읽게 되면 본서의 충분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할 뿐 아니라 루이스의 걸작을 읽지 못할 수도 있음.

- 글/정지영(IVP 기획실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