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에 앞서.
질문 답변 게시판에 제가 직접 작성한 바 있는 글들을 정리하여 몇차례에 걸쳐 소개를 할까 합니다. 스스로 전문가라고 여기지도 않고, 또 여기에 글을 쓰기에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도 압니다만, 일단 지식 공유 차원에서 하나씩 하나씩 다뤄볼 생각입니다. 참고문헌을 나름대로 뒤지면서 작성한 것들이지만 틀린 부분이 보이는 분들은 가차 없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타 사이트들의 글들을 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어떤 사이트에서는 일본식 이름의 표기조차 제대로 안되어 있어서 후쿠다 하치조 선생을 그냥 복전팔지조 라고 기록해 두는 등, 제대로 된 자료라는 걸 찾아보기가 너무 어려워서 말이죠. 마에다 미츠요님에 대한 자료도 틀린 부분이 너무 많아 새로 정립할 필요가 있을 듯 하구요. 요즘 브라질 유술이 MMA계를 거의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그 유술이라는게 일본 유술이 그대로 건너간 것이라 잘못 아시고 유도를 비하하는 발언을 심심찮게 하시는 걸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브라질 유술의 베이스는 어디까지나 유술이 아니라 유도였으니까요.
또 제가 가장 많이 다뤘던 가라데에 관해서는 최영의님과 관련된 그 뒷이야기들을 중심으로 돗포님이나 블랙터치님과 상의해서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유도의 창시자 가노 지고로
(먼저 가노 지고로의 이름에 대한 부분부터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국내의 유도에 관한 홈 페이지 상당수가 가노 지고로의 이름조차 제대로 표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놀라운 점입니다. 가노지 고로 라고 표시한 부분도 있고 카지노고로라고 표기해둔 홈페이지도 있더군요...조금은 씁슬한 부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수련인구를 지닌 유도가 그 창시자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
가노 지고로는 선천적으로 힘과 체력이 약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체격또한 작은 편이었죠. 그걸 극복하기 위해 유술을 익히게 되는데 그 유술은 천신진양류(天神眞楊流)로써 당시에 그렇게 큰 세력을 자랑하던 유파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일본 최대의 세력은 도츠카 양심류라는 유파였고 군소 유술 유파들은 200개가 넘던 시절이었습니다. 가노 지고로는 천신진양류의 후쿠다 하치조(福田八之助)라는 스승에게서 유술을 익혔다고 하는데 이때가 나이 18세였다고 합니다. 어릴 적부터 무술에만 정진해 온 마에다 미츠요나 최영의님, 그리고 우에시바 모리헤이님등과는 상당한 차이가 나는 부분이죠^^ 그만큼 가노 선생은 무술에는 타고난 천재였다는 증거일수도 있구요.
가노 선생은 기본적으로 학자적인 소양이 아주 뛰어난 분이어서 메이지 14년(1881년)에 동경제국대학(지금의 동경대)를 졸업하였고 그무렵에는 기도류(起倒流) 유술을 배우게 됩니다.
엄밀히 말해 가노 선생이 제대로 사사받은 것은 천신진양류와 기도류 이 두가지인데 이 유파들의 강점이 유도에 그대로 녹아들어가게 됩니다. 천신진양류는 조르기(특히 소매를 응용한 조르기)와 당신기(흔히 말하는 급소 지르기입니다. 초기 유도에는 당신기라 하여 타격기가 존재했습니다. 지금도 본으로는 남아있고 6단 이상의 고단자 기술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라졌다고 보는게 옳습니다.), 배대되치기, 무릎대 돌리기,허리튀기기, 밧다리 후리기 등의 기술이 유파의 장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허벅다리 후리기는 기도류의 기술이었던 것이죠^^ 대한 유도회 사이트에서 발췌)
기도류는 갑옷을 입은 적들을 격파하기 위한 전장용 유술로써, 변화무쌍한 메치기가 그 특징이었다고 합니다. 유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한팔 업어치기와 빗당겨치기 허벅다리 후리기 등이 이 유파의 특징이었다고 합니다.
이 두가지 유파를 섭렵한 가노 지고로는 타 유술의 강자들과 대결해서 모두 승리하며 그의 강함을 알리게 됩니다. 그 결과 23세에 불과했던 젊은 가노 지고로는 강도관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 가노류 유도라는 새로운 문파를 개창하게 됩니다. 강도관이라는 이름은 講道라는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한 기술(術)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도를 가르친다는 의미에서 붙인 것이고 그 도라는 것이 바로 유도였던 것입니다.
처음의 강도관은 관원 9명, 12개의 다다미를 가지고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천신 진양류의 유술도장들과는 계속 교류를 하면서 좋은 선수들을 영입합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덴구던지기로 유명한 요코야마로써 강도관 사천왕(토미다, 야마시타, 사이고, 요코야마)중 가장 파워풀한 유도를 구사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요코야마는 가노 지고로 밑으로 들어올 때 이미 기술적으로 완전히 성장한 상태라 가노 지고로의 완벽한 제자라고 보기엔 어려웠고, 거의 사형과 사제 의 관계였다고 합니다.
가노류 유도의 최종 진화형을 보여준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역사상 최강의 유도가라고 불리는 사이고 시로였습니다.(사이고 시로에 대해서는 2부에서 다루겠습니다.) 사이고 또한 천신진양류 도장에서 수련을 쌓았으나 워낙에 작은 체구 때문에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 도장에 잠시 인사차 들렀던 가노 선생은 그의 재주를 알아보고 자신의 문하로 끌어들입니다. 이후 필살의 메치기 '야마아라시'로 전 일본의 무도계를 굴복시킨 유도의 초인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토미다 선생은 실제 시합엔 거의 참가하지 않았고 야마시타의 경우도 무술 강론에 치중했기 때문에 도장 대항 시합에는 언제나 요코야마가 선봉이고 사이고가 대장으로 나섰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888년(1890년이라는 기록도 있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에 경찰청 유술 시합에 강도관이 참가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시합은 엄밀히 말해 대회가 아니라 강도관 유도와 전 유술계 연합이 격돌하는 시합이었습니다. 이 시합에서 요코야마 선생은 무승부를 기록하게 되었으나, 사이고 선생이 야마아라시로 도츠가 양심류 최강자를 격파시키면서 강도관 유도가 명실 상부한 일본 최고의 무술로 자리잡게 됩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가노 지고로 선생의 필살기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가노 선생이 현역시절에 썼던 필살기가 바로 허리채기(허리껴치기)입니다. 이것은 다소 의외라고 할 수 있는데, 유도장 한 번이라도 다녀보신 분이면 아시겠지만, 흰띠로 들어가서 젤 먼저 배우는 메치기가 바로 허리채기죠^^ 이 가장 간단한 메치기가 바로 가노 선생이 개발한 스페셜 기술이었다는 겁니다. 가노 선생이 강도관 유도의 본에 이 기술을 추가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이 기술은 비전으로 남아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시 가장 단순한 기술이 가장 강력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죠.
이후 가노 선생은 1909년 국제 올림픽위원회의 위원이 되며 유도를 세계에 보급하는 사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유도는 1964년부터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가노 선생의 특징은 타 무술을 비난하지 않고 타 유파의 좋은 점은 다 받아 들였다는 것인데요, 대표적인 예로 오키나와 당수의 도입입니다. 가라데 즉, 오키나와 당수가 처음으로 일본에 전해진 것이 가노 지고로 선생의 초청으로 강도관에서 오키나와의 강유류 사범들이 연무를 보인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이또스 선생과 후나기고시 선생의 송도관과 미야기 선생의 강유류등이 일본식의 가라데로써 등장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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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처음 올려보는 글인데다가 국내 인터넷 자료들로는 제대로 참고할만한 글조차 거의 없는 형편이라 다른 분들이 올리신 글들에 비해 수준이 많이 떨어지는 점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형편없는 글이지만 그냥 지식 공유 차원이라 생각하시고 너그럽게 읽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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