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 정민이의 돌이 지나고 얼마 후,
장인어른이 작은 거북이 두 마리를 사오셨다. 아주 작은 거북이 두 마리가 유리바구니 안에 담겨졌고, 우리 가족은 며칠 동안 아침 저녁으로
거북이들을 보며 신기해했다. 4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한 마리는 일찍 죽고 나머지 한 마리는 아직도 유리바구니 안에서 살고 있다. 요즘은
아무도 거북이를 쳐다보지 않는다.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이나 거실의 소파처럼 거북이가 한 마리 그저 있을 뿐이다. 미국에 촬영을 갔다 와도,
중국에 촬영을 갔다 와도 거북이는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냥 거기에 있다.
차별 받은 거북이와
개
작년인가 보다. 집사람이 여행을 가서 며칠 동안 나 혼자 집에 남게 된 적이 있었다. 집사람이 내가 혼자 있으면서 해야
될 일들을 적어 주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매일 거실의 거북이와 마당의 개에게 먹이를 주는 일이었다. 오랜만에 집에 혼자 남게 된 나는, 하루
이틀은 친구들을 만나 놀기도 하고, 생각도 하고, 거실에 누워 하루 종일 텔레비전도 보면서 모처럼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한 삼
사일이 지나 집사람이 여행에서 돌아와, 나에게 거북이 먹이는 빠뜨리지 않고 주었냐고 물었다. 순간 그 동안 거북이 먹이를 한번도 안 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당의 개에게는 아침 저녁으로 먹이를 주고 쓰다듬어 주고 했지만, 거북이한테는 먹이만 안 준 게 아니라, 그게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삼 사일 동안 우리 집 거실에서 숨쉬는 존재가 나와 거북이 딱 둘이었는데, 나는 거북이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를
생으로 굶겼던 것이다.
작은 거북이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 새처럼 지저귈 수 있다면, 개처럼 짖을 수 있다면, 자신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드러낼 수 있었을 텐데,
그냥 거기 가만히 있는 바람에 나는 그의 존재를 전적으로 망각하고 그를 굶긴 것이다. 그날 밤 집사람과 거북이한테 미안한 마음에 먹이를 주며
"배고팠지, 얘기 좀 하지 그랬어"라고 계면쩍게 말을 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요즘 우리 가정은 투병중인 장모님 때문에 모두
슬퍼하고 있다. 영어에 'mourning'이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 가정은 지금 소리 없는 모어닝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우리 장모님은
에프엠대로 살아오신 분이다. 한번도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도 없이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주어진 대로 그렇게
살아오신 분이다. 꽃을 사랑하고, 꽃을 사랑할 수 있는 여유에 감사하며, 항상 아름다운 생각을 하고, 항상 아름다운 말을 하면서, 어쨌든 내가
아는 지난 8년 동안 장모님은 그렇게 훌륭하게 살아오셨다. 4년 전 암 선고를 받고 어려운 수술을 하신 후에도, 본인이 스스로 암을 이기시겠다고
공부하셔서, 책에 나온 대로 먹으라는 것만 먹고 먹지 말라는 건 절대로 안 먹으면서 철저한 금욕생활을 하셨고, 자신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을 하셨다.
암 투병중인 장모님
지금, 장모님은 영동세브란스 병원에 누워 계신다. 입원하신 지
이제 약 두 주일이 지났다. 암이 전이되었다고 한다. 하루하루 입원실에 갈 때마다 점점 기력을 잃어 가시는 장모님을 보면 가슴이 찢어진다.
아니, 찢어지다 못해 누군가 수세미로 내 심장을 박박 긁고 있는 것처럼 아프다. 내가 이리 아픈데, 나의 집사람이나 장인, 처남의 심정은,
장모님 본인의 심정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겉으로 티를 안 내려 노력하지만 역시 마음은 아프다.
요즘 들어 자꾸 현우 생각이
난다. 지난 2000년이던가. 내가 다니는 교회에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던 아이였다. 나는 당시 서울과 의정부를 오가며 '왕초'라는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었는데, 현우 어머니의 부탁으로 병문안을 한번 갔다. 한번이었지만 교회에서도 같이 앉아 예배를 드린 일도 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우는 무척 의젓했고 병을 이기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골수이식을 제대로 못 받아 현우의 병세가 위중해질
무렵, 장모님이 현우가 병원에서 보고 싶어 하니 한번만 더 문병을 가 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워낙에 거지 배역을 맡아서, 평소에도 더부룩한
머리에 지저분한 인상으로 다니고 있던 당시인지라, 그게 거북스러워, 다른 사람 앞에 나가는 게 싫어서, 몸이 조금 피곤해서, 있는 핑계 없는
핑계 다 생각해 내며 나는 현우를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우는 조용히 갔다. 그 후로 얼마동안, 현우 어머니와
마주치는 것이 괴로워 교회를 안 나갔다. 나는 현우도 에프엠대로 살았다고 믿는다. 아이에겐 천사의 마음만 있을 뿐이니까. 그런데, 그 순수한
어린 생명을 하나님께서 데려 가셨다.
나는 모태신앙자이다. 어릴 때부터 기독교의 테두리 안에서 자라났다. 부모님께서 나에게 물려주신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이 나를 모태신앙자로 키워준 것이라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살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이해가 안 간다. 왜 데려 가시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살기는 살아야 하는 건지.
나도 이해가 안 가는데, 삼풍백화점 사고
유족들이나 대구 지하철 사고 유족들은 이해가 갈까? 폭격 맞아 죽어간 이라크 어린이들이나 굶어 죽어 가는 북한 어린이들은 이해가 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란 무엇일까? 하루 종일 이런 질문 근처에서 서성이지만 답을 시원하게 얻을 수 없다.
아내와
나눈 아브라함 이야기
며칠 전 집사람이 병원을 다녀온 후 한참을 울고 나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요나처럼 도망갈
생각은 안 해봤을까? 난 예전에 아브라함이 참 이기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자신의 믿음이 좋기로서니 어떻게 자식을 제물로 바칠까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집사람은 이런 얘기를 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우리가 상상하는 인간적인 믿음이 아닐 것이다. 아브라함은 만일
자신이 이삭을 죽인다고 하여도 다시 하나님께 믿고 구하면 반드시 살려주시리라는 그런 처절한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자식을 제물로 바칠
수 있었고,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그렇다. 그러니까, 믿음의 조상인 것이다. 요즘 들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믿음, 인간의 머리로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 다시 한번 숙연해짐을 느낀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해주셨나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예수님께서는 "믿고 구하면 들어주신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에게 말씀하셨는데…. 성경 전체가 믿고 구해서
이루어진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그 성경을 그리 오랫동안 접했으면서도,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입에 달고 살았으면서도 나의 믿음은 너무나 인간적이고
연약했나 보다.
시련이 닥쳤을 때 "고통스럽다, 마음이 아프다, 이해가 안 간다"라는 생각만 했을 뿐, 진심으로 믿고 구한 적이
얼마나 됐는지 생각해본다. 어쩌면 나는 그 동안 우리 집 유리병 속의 거북이처럼, 배고파도 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그냥 살아온 것 같다.
거북이는 소리를 못 내기에 주인과 얘기를 나눌 방법이 없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서로 대화하고 교감하자며 기도라는 선물을 주셨는데 그걸 잊고
살았다.
요즘 집사람은 새벽기도를 나간다. 틈만 나면 우리는 기도한다. 주인한테 잊혀지지 않는, 유리벽을 긁어서라도 주인과 교감할
수 있는 거북이가 되려고 매일매일 기도하면서 살고 있다. 살려달라는 기도가, 오늘 밤은 편안히 주무실 수 있게, 내일은 미음을 드실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로 바뀌었다. 그리고 하루하루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우리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도 생겨났다. 주님의 섭리를 이해할 순 없지만 우리는
요즘 확실히 주님과 교감을 하면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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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새길기독사회문화원에서 발간하는 [새길이야기] 2003년 여름호에 수록된
간증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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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신애라가 말하는 ‘예은이 만남에서 입양까지’ |
[마이데일리] 2005-12-14 1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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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나요. 지난 며칠동안 입양을 위한
절차를 밟는 동안 가슴이 뛰어서 일을 제대로 못했어요. 오늘 예은이가 집에 와 너무 벅차요”(차인표) “배가
아파 낳은 아들 정민이와 가슴 아파 낳은 딸 예은이는 똑같이 소중한 가족”(신애라)
두 부부는 가족으로 맞이 하는 예은(1)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예은이가 14일 대한사회복지회에서 입양절차를
모두 마치고 신애라의 품에 안기면서 예은이는 이 세상에 소중한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오빠를 얻게 됐다.
14일 이들 부부의 입양은
10년만의 마음속 약속을 지킨 것이었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 출연으로 애인 사이가 된 두사람은 지난 1995년 3월 결혼식을 올렸다. 이
결혼식에서 두사람은 서로에게 약속을 하나 했다. “첫째아이를 낳고 둘째 아이부터 입양을 해서 키우자고”
첫째 정민이가 태어난 뒤
둘째 아이를 입양하기 어려웠다. 바로 신애라의 어머니이자 차인표의 장모인 우영미씨가 위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신애라, 차인표 부부는 5년여
동안 연예계 활동과 우씨의 간호에 매달리면서 입양 계획을 약간 유보했다. 지난해 우씨가 숨을 거뒀다.
신애라는 늘 하던대로 각종
기관에 나가 봉사활동을 하고 정민이와 남편 차인표의 뒷바라지로 바빴다. 신애라는 남편 차인표가 ‘홍콩 익스프레스’를 끝내고 시간이 남는 틈을 타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했다.
올 3월 13일 탄현제작센터에서 열린 SBS
드라마‘불량 주부’기자 간담회에서 신애라는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 하나를 들려줬다. “둘째는 입양하고 싶어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정민(아들)이가 좀 더 크고 지금보다 그릇이 커지면, 동생을 입양할 생각이 있다. 직접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입양이 더 절실했다”라고 말했다.
처음으로 입양할 의사가 있음을 공개한 것이다. 하지만 차인표는 기자와 수차례 만나면서 입양에 대한 계획과 준비를 이야기 해 부부가 입양에 대해
간절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들 부부는 봉사활동과 성금기탁, 자선단체 홍보대사 활동 등을 활발히 하는 가운데 특히
아동학대방지센터, 고아 시설 지원등 영육아시설과 어린이 후원을 위한 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차인표는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아동학대방지센터에
억대에 이르는 거금을 쾌척했는가 하면 지난 해와 올해 북한을 방문했을 때에도 보육원을 방문해 선물과 거액을 기탁했을 정도다. 또한 올초 대만을
방문해 대만 드라마 출연료 전액을 고아를 돌보는 구호기금에 기탁해 현지 언론으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고아, 어린이 사랑도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신애라 역시 ‘불량주부’홍보차
올해 대만을 방문했을 때 신애라는 예정에 없던 보육시설을 찾았다. 신애라는 대만의 대동(大同)보육원을 찾아 한국에서 손수 준비한 선물을 나눠주며
아이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대만 일간지 대성보는 보육원의 아이들이 ‘신씨 아줌마’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악기 연주와 춤놀이를 준비했으며
신애라도 즉석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차인표가 만들어 화제가 됐던 ‘응가송’을 불러 아이들을 즐겁게 해줬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신애라와 보육원 아이들이 즐겁게 어울려 언어장벽을 무색케했다고 덧붙였다.
신애라는 이 보육원에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자식을 무척 사랑한다”며 “엄마가 어디 있을 지는 모르지만 엄마 심정은 다 나와 같을 거야. 너희들 힘내고 희망을 버리지마”라고 보육원
아이들에게 격려를 했다.
차인표, 신애라 부부는 “아무리 힘든 처지에 있는 어린아이들도 정성과 사랑으로 대하면 그 아이는 훗날
사랑을 베푸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더 어린 아이들에게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말했다.
입양이 구체화된 것은
1개월전이다. 차인표는 “애라씨가 봉사활동을 나가는 대한사회복지회에 갓난 아기가 들어왔는데 눈에 밟힌다고 아파했다. 계속 그 아이를 보면서
아파하며 입양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행복하게 입양을 동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사람은 한사람을 입양하는 것은 가족 구성원이
된다는 것이기에 가족들에게 입양의사를 밝혀야했고 무엇보다 나이 어린 정민이가 동생이 생긴다는 사실에 혼란을 느낄 것을 걱정했다. 차인표와
신애라는 “초등학교 1학년인 정민이에게 동생이 생긴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정민이가 어려서 입양에 대한 의미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찬성을 했다.
앞으로 정민이가 힘들어하는 상황은 있겠지만 최선을 다해 설득하고 마음으로 동생을 받아들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곧 바로
차인표, 신애라부부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장인어른를 찾아가 갓난 여자 아이 입양의사를 내비쳤다. 부부는“입양을 계획을 말하자 1분도 안돼
찬성을 하셨다. 세분이 모두 새가족이 생기는 걸 진심으로 기뻐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차인표가 갓난 아이를 처음 본 것은
10여일전이다.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났다. 꼭 정민이 처음 봤을때 느낌이었다. 애라씨가 배아파 낳았든 가슴아파 낳았든 모두 내자식이다”고
당시의 벅찬 감동을 전해줬다.
갓난 아이의 이름은 가족들과 상의해 예수님의 은혜라는 의미로 ‘예은’이라고 지었다. 입양기관의
입양여부에 대한 가정환경 조사 등 입양에 필요한 절차를 마친 뒤 14일 예은이는 차인표 신애라 부부의 딸로 거듭났다.
신애라는
“입양은 숨길 일이 아니라 아이를 주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방법일뿐”이라며 “배가 아파 낳은 아들 정민이와 가슴아파 낳은 딸 예은이는 똑같이
소중한 가족”이라는 말을 건넸다. 차인표, 신애라, 정민이 그리고 예은이가 앞으로 행복한 일만 있기를 기원해본다.
[차인표
신애라는 입양한 예은이나 배아파 낳은 정민이나 모두 소중한 가족이다고 말한다.사진=마이데일리 사진DB]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
knba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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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를 왜 아름답다 하는가 [배국남 칼럼] |
[마이데일리] 2005-12-15 0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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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 2001년 12월 30일 미국에서 낯익은 목소리의 사람 전화 한 통화가
걸려 왔습니다. “‘007시리즈’(20번째 작품) 출연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완성된 대본을 보니 남북한 상황을 상당 부분 왜곡해서요.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세요.” 차인표였습니다.
14일 아침 차인표, 신애라 부부가
둘째 아이 예은(1)이를 입양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 통화를 하면서 그 생각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한 아이를 딸로 받아들이면서 가슴 벅찬
목소리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며 이어가는 차인표의 이야기를 들으며 떠오른 4년전 전화통화. 두 전화통화를 통해 전 차인표가 대중의 가슴에
아름다움으로 감동을 남기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최근 한 연기학교에서 수강생들에게 차인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중예술인(연예인)은 대중의 가슴을 진정으로 감동시켜야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스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중의 사랑으로 스타가 됐을
때에는 그 사랑을 대중에게 돌려줘야합니다. 스타가 누리는 돈과 인기는 잠시 빌리는 것뿐입니다”
저는 그동안 취재 때문에 수많은
연예인을 만나왔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움으로 감동받는 연예인은 극소수에 달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경쟁이 심한 연예계에는 이해타산에
매우 민감한 자본주의 논리가 잘 구현되는 곳이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한국일보에서 처음 대중문화 담당을 했을 때 평소 알고 지내던
한 방송사 PD가 대뜸 대중문화 담당기자 하려면 절대 연예인에게 정주지 말라는 충고를 했습니다. 20여년 넘게 연예인을 만나고 인연을 맺었던
연출자의 입에서 “정주지 말라”는 말은 저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지요.
사람 사는데 정주지 않고 어떻게 삽니까라는 답으로 그
PD의 충고를 받아 넘기고 대중문화 담당기자로서 원칙을 하나 세웠지요. 아무리 만능 엔터테이너 시대이지만 연기자는 연기력을, 가수는 가창력을
판단해 기사의 비중을 결정하고 비판과 칭찬을 하자는 생각이었지요.
그 PD의 충고의 의미를 깨닫는데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대중에게 비쳐지는 이미지와 실제 스타간의 괴리 속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차인표를 만났지요. ‘왕초’ 라는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았는데 저는 그에게 대뜸 당신의 연기는 세밀하지 못하고 캐릭터와 당신이 따로 노는 것 같아 이제 어깨에 힘을 빼고 연기를 하면
좋겠는데요라는 말을 했지요.
다른 연예인 같으면 얼굴이 찡그러지고 신경질적 반응이 나올 법한데 그는 달랐습니다. 적확한 지적이라며
자신도 그 부분에 대해 개선을 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는 대답을 하더군요.
그 말을 ‘왕초’에서 실천하는 노력도 보여줬고요.
이후 그와의 만남은 저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지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연예계에도 신의와 약속을 지키는 친구가 있으며 정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은 제가 갖고 있는 연예계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계기였고 취재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거였으니까요.
저는 그동안 차인표의 생활인으로서의 모습과 연예인으로서의 모습을 오랜 기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술 한잔하면서 부모의
이혼으로 힘들었던 유년시절 그리고 가난한 유학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당당하게 성장한 그에게 찬사를 보내기도 했고 언제 어느 때나 선배, 후배
연기자들에게 깎뜻하게 대하고 늘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에 먼저 나타나 준비하는 모습을 볼 때에는 저도 저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반성도
하게됐지요.
그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느꼈던 점과 그를 만난 사람들이 들려준 몇가지 이야기들은 왜 그가 아름다운지를 쉽게 이해하게
만듭니다.
▼드레스 정장과 감자 농사
그는 정확하고 성실하다. 그리고 예의 바르다. 2년전 동료 연예인들과 미국 여행 중 예정에도 없던 한
레스토랑을 찾게 됐다. 백화점으로 뛰었다. 정장을 원칙으로 하는 레스토랑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연예인들은 아무도 정장을 하지 않고 들어갔지만
그는 정장을 구입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와 동행했던 전MBC 장용우 PD가
전한 말이다.
연출자나 감독들은 그의 좋은 매너에 곧 잘 속는다. 출연 섭외를 논의하자고 제의하면 정확히 나타나기 때문에 모두
출연할 것이라는 확신을 한다. 하지만 정중한 거절을 표하기 위한 그 나름의 배려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혀를 내두른다. 늘 이런
식이다.
“어머니는 감자 농사를 지으신다. 그러나 언젠가 우릴 반겨줄 어머니가 더 이상 안 계실 날이 올 것이 아닌가. 어머니의
환한 미소가 그리워질까 봐 나는 일요일이면 농사를 지으러 정민이와 아내와 함께 어머니가 감자 농사를 짓는 곳으로 향한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느낌을 팬클럽 사이트에 올린 정감이 묻어나는 그의 글이다.
그가 가족에 대한 생각과 태도를 엿볼 수 있는 것은 그가 평소에 쓴
글들 곳곳에 배어 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라는 글로 시작하는 아내 신애라에게 보낸 편지(한국일보 2001년 5월 24일자)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난 당신의 큰 아기인 게 너무나 행복했지만, 당신은 참 힘들었죠. 앞으로는 당신이 나의 큰아기가 되세요. 서툴지만, 노력하는 당신의
아빠가 될 게요. 결혼할 때 내가 했던 말, 기억하나요? 당신이 “나를 얼만큼 사랑해?” 하고 물으면, “무한히 사랑해” 라고 답했었죠. 이제
그 말 취소할래요. 나는 당신을 작년보다 올해 더 사랑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하구요, 오늘보다 내일 더 많이 사랑할 겁니다. 당신은
어느새 존경하는 내 어머니의 모습을 닮아 있네요. 당신 옆에 오래있을 게요. 당신은 오래만 살아주세요. 더 많이, 더 깊게 사랑할 수
있도록…”
▼ ‘007시리즈’ 출연 거부와 군입대
“한반도 현실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는 ‘007 영화’ 출연을 포기하고 할리우드 진출을 포기한 탤런트 차인표씨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 “영주권을
포기하고 군복무를 다한 차인표는 바른생활 사나이의 전형이다” 등 그의 행동에 대해 많은 대중매체와 사람들이 칭찬을 했다. 그는 이에 대해
“비난받는 사람과 나는 종이한 장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나 역시 잘못을 할 수 있고 잘못도 하고 산다.” 그의 대답은 이렇게
명료하다.
영화 출연 거절과 군입대 이유에 대해서는. “지구상의 3억 명 이상이 보는 유명한 시리즈 영화에 남북한이 잘못 그려져
있어 출연하지 않았다.” “나는 한국에 살고 싶었다. 그리고 사랑하는이와 결혼하고 싶었다. 그래서 군대를 갔다.”
▼박찬호와
순덕이
차인표는 지난해 드라마와 뮤지컬 출연등 바쁜 와중에 미국을 찾았다. 바로
슬럼프에 빠져있는 박찬호를 격려하기위해서다. 그는 미국에서 돌아와 일상사를 써달라는 기자의 원고 청탁을 받고 “힘든 박찬호에게 격려를 보내자”는
취지의 정성이 담긴 원고를 썼다.
그가 만났던 사람 중에 순덕(12)이라는 넝마주이 소녀가 있다. 서울 청담동 살 때 귀가하다
우연히 동네에서 이 소녀를 만났다. 너무 힘들어 보여 집에 데려가 밥도 먹이고 옷도 사 주었다. 동정은 결코 아니라고 했다. 그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 아이와의 만남이 그가 극본을 쓰고 연출한 인터넷 영화‘노란 리어커’ 에 담겨
있다.
▼몇가지 에피소드들
몇 년전 그를 만났을 때 그는 휴대폰의 폴더가 떨어져 테이프로 붙여 사용하고
있었다. “쓰는 데 지장 없는데 바꿀 필요가 있겠느냐.” 이유가 간단하다. 이번에 만났을 때 휴대폰이 새 것으로 바뀌었다.“(윤)태영이가 선물한
것이다. 오래된 휴대폰이 잘 들리지 않아 선물로 받은 것이다”
신문사에서 인터뷰 도중 회사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야간 고교생들이 우르르
몰려 사인을 부탁하는데 그는 싫은 내색하지 않고 사인을 해주며 열심히 살라는 당부까지 했다. 그 학생들은 그런 차인표를 보며 적잖이 감동을
받았다. 사인을 받은 한 아이는 이런 말을 했다. “나 역시 평생 저런 겸손함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
최근 스타와 매니저가
몸값 올리기에만 급급한 줄 알았더니 차인표가 출연한 ‘목포는 항구다’
영화가 투자의 문제가 생겨 차질을 빗자 그가 투자자를 직접 만나 자신 때문에 투자를 하지 않으면 과감하게 영화에서 빠지겠다며 투자자를 설득하는
차인표를 보고 연예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바로 이 영화 제작자의 말이다.
한류의 초창기부터 대만, 중국인들의 관심이
대상이 됐던 차인표. 몇년전 한국 연예인으로는 처음으로 대만에 드라마 홍보 초청을 받았다. 대만측의 팬들의 반응이 대단하다는 말과는 달리
공항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사인회장도 한산했다. 하지만 찾아온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 사인을 했다. 한두사람에서 시작한 사인은 600명에
이르렀고 차인표는 일일이 이들에게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줬다. "반응이 없어 창피하기도 했지만 훗날 우리 스타가 대만을 찾을때 우리 스타에게 좋은
인상을 갖도록 하기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가 첫만남에서 대만인에게 최선을 다한 이유다.
▼북한 방문과 예은이
지난해와 올해 두 번의 북한방문을 했다. 그가 봉사활동을 하는 굿네이버스와 함께 북한 어린이 지원과 의약품
공장 준공 참석 때문이다. 북한 어린이도 남한 어린이처럼 소중해 조그마한 힘이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 때문에 북한에 성금을 기탁하고 북한을
방문했다고 했다.
그는 연예인중에 아마 가장 활발하게 자원봉사와 홍보대사, 그리고 불우시설이나 구호단체에 성금을 기탁하는 연예인중
한사람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중에게 받은 사랑을 일부라도 갚기위해서”란다.
이러한 그의 어린이 사랑이 14일 예은이 입양으로
까지 연결됐다. 비공개 입양을 하고 싶었지만 연예인이기에 어쩔수 없이 입양사실을 공개했고 앞으로는 예은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대중매체에서
예은이에 대한 취재는 자제해주었으면 한다는 당부를 한다.
저는 거의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인데 차인표에
대한 사생활을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요즘 연예계가 돈만이 지배하는 그래서 더욱더 대중문화가 척박해지는 풍토가 아쉬웠고 돈보다 더욱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차인표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갓난아기 예은(1)이 입양으로 눈길을 끌고 있는 차인표. 사진=마이데일리
사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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