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의 젊은이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김 인수 교수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1. 들어가는 말
우리는 6.25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고 생각되는 경제위기를 맞았습니다. 이 위기는 외환과 금융시스템 관리의 미숙에서 기인된 것이 아니라, 그 근본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전문성의 결여, 부정직과 이기심이 결탁하여 만들어내는 부정부패, 경직된 사회조직 등에서 기인한 국가와 사회의 경쟁력 저하 때문입니다. 이러한 위기를 당한 이 시대의 문제를 풀기 위해, 또한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이 새로운 시대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복음을 받은 우리 젊은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경직된 사회조직도 유연한 것으로 바꾸어 나가야 하겠지만 각자가 전문성을 제고하고 정직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여름 시카고에서 개최된 재미유학생수련회에는 1,5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참석했습니다. 그곳에서 말씀을 전하며 많은 유학생들과 상담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상담했던 유학생들을 그 내용에 따라 분류해 보면 세 집단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신앙적 기본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하여 방황하는 학생들입니다. 둘째는 자기들이 공부하고 있는 것은 세상적인 것이며 하나님께 헌신하려면 목사, 선교사, 또는 사모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원론적 사고에 고착되어 있는 학생들입니다. 셋째는 유학생활이 여의치 않아 상당히 좌절하고 있는 학생들입니다.
이 글은 이미 복음의 확신을 가진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첫째 문제는 여기에서 다루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두번째와 세번째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이 사회에서 우리의 역할이 달라질 것이며 위에서 언급한 사회 문제에 대한 우리의 영향력도 달라질 것이기에 이들 문제를 중심으로 제 생각을 전개하고자 합니다. 이 선교광주를 주관하시는 분께서 제 개인의 경험까지 포함하여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하셨기에 외람되지만 제 경험의 일부를 곁들이기로 하였으니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하루에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두 곳에서 보냅니다. 하나는 가정이요, 또 하나는 직장입니다.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림 1>에서 가정과 직장이라는 두 가지의 변수를 가지고 인생을 네 가지로 분류하여 생각해 봅시다.
가정 1) | 2) | | +--------------+----------------+ 직장 | | | 불행 |
첫째는 가정에서 신나게 살고 직장에서도 신나게 사는 인생입니다. 직장에서 신나게 산다는 것은 세속적인 의미에서 출세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신이 나서 즐겁게 뛰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또한 이 사람은 가정에서도 화목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입니다. 둘째는 가정에서는 신나게 살고 있지만 직장에서 힘들게 사는 인생입니다. 사회적으로 보아서는 별로 대단한 인생이 아니지만 인간적으로 보아서는 소시민적 행복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가정에서 불행하지만 직장에서 야단스럽게 사는 인생입니다. 밖에서 보면 꽤 괜찮은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하지만 가정에서는 불행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가정에서 문제가 많은 사람들 중에는 자기들의 에너지를 지나치게 바깥일에 쏟아 붙기 때문에 남들이 알아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의 마음 한구석은 항상 텅 비어 있습니다. 가정과 직장 두 곳에서 다 신나게 사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둘 중 하나 밖에 얻을 수 없다면 저는 가정에서 더 행복한 사람이 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한 인간으로서는 더 행복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가정에서도 문제가 심각하고 직장에서도 문제가 심각한 인생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면 직장에 가기 싫고, 저녁에 직장이 끝나면 집에 가기 싫어합니다. 퇴근하면 갈 곳이 술집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10년쯤 살다 보면 코끝이 빨갛게 채색되어 버립니다. 여러분은 이 네 가지 인생 중 몇 번째에 해당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각자 마음속으로 대답해 보세요. 그 인생은 바로 자기 스스로 만든 것입니다. 가정에 대한 얘기는 여기에서 생략하고, 오늘은 직장에 대한 얘기를 할 생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직장이나 직업을 단순히 생활의 수단쯤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직업은 생활의 수단이 아니라 생활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깨어있는 낮 시간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게 되니 생활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직장이 삶의 본질이 되어야지 수단으로 간주할 수는 없습니다.
2. 하나님의 소명인 직업
많은 젊은이들이 생각하듯이 교회와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목회자, 사모님, 선교사 등의 직분은 하나님의 일이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사회에서 종사하고 있는 직업은 세상의 것이라는 말입니까? 직업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가 많지만 그 중에 하나는 Calling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신(神)의 소명(召命)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그 비슷한 표현이 있습니다. 천직(天職)이라는 단어가 바로 하늘이 나에게 맡긴 직분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맡아 하는 일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것은 여러분의 천직인 것입니다. 적어도 천직인 줄 알고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 중에서 진정 신의 소명이라고 할만큼 의미 있는 일이 있을까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신부, 목사, 수사, 수녀라면 혹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우리가 맡아 하는 일 중에서 신의 소명이라고 여길 만큼 의미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지금까지 44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해왔습니다. 온갖 것을 다해 보았습니다. 기능공으로 시작하여 교수의 자리에까지 오면서 10여 종류의 직업을 가져 보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신의 소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의미 있는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골로새서 3장 23-24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이 말씀은 그 당시 노예로 일하는 성도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업 중에서 가장 고생스럽고 희망도 없고 의미도 없는 노예의 일을 주께 하듯 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이 곧 그리스도를 섬기는 소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이 말씀을 적용해 봅시다. 네거리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순경이라면 두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분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하루종일 근무를 합니다. 자기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책 한 페이지 읽을 시간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한탄하면 먼저 본인의 심신이 어려워지고 그 일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까지도 힘들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 교통순경이 생각을 바꾸어 '내가 오늘 일을 잘함으로써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기분 좋아질 수 있다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고 의미를 부여하면 본인의 심신이 평안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을 전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해 전에 학교에서 똑같은 강의를 하루에 세 번 반복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첫번째 강의는 힘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 강의는 별로 신나지 않았지만 그런 대로 할만 했습니다. 그러나 세번째는 강의실에 들어가기조차 싫었습니다. 이런 때에 생각을 바꾸었더니 새로운 힘이 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같은 강의를 반복해야 하는 것이 재미없었지만, 그 강의를 처음 듣게 되는 학생들이 제 얘기를 듣고 인생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변화한다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고 생각하니 세 번 반복해서 강의하는 것도 의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다시 힘이 생기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해 전 미국 여행을 갔을 때 샌프란시스코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습니다. 다음 비행기 시간까지는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그 시간을 어떻게 유용하게 쓸까 생각하다가 오랫동안 뉴욕타임스를 못 읽은 생각이 났습니다. 매점에 들어가 뉴욕타임스 한 부를 들고 50대 중년의 흑인 여인이 서 있는 카운터에 계산하려 갔습니다. 그때 그 부인이 저를 보고, 'How are you today?'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인사에는 그 부인의 온 정성이 배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I am fine. How are you?'고 인사를 하며 돈을 건네자 그 부인은 영수증을 건네주면서 'Have a nice day today.'고 다시 축복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Same to you.'고 축복을 돌려드리며 나왔습니다. 그분과 제가 스친 것은 약 10초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눈 말은 단 두 마디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따뜻함과 온 정성을 제게 다 쏟아 주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분은 그 직장에서 가장 말단에 있고, 월급도 제일 작고, 교육도 별로 필요하지 않은 단순한 일을 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 일을 하나님의 소명으로 생각하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따뜻함과 감동을 전해 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자기가 하는 일이 아무리 하찮아도 그것을 하나님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일에 의미를 부여할 때 할 만한 가치가 있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직업은 그것이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 자체가 우리에게 신의 소명이라고 생각할 만큼 의미를 부여해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 일을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확신하고 의미를 부여하면 할만한 맛이 날 것입니다.
3. 최선을 다하여 탁월성을 추구해야
제가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후 그곳 대학에서 3년간 재직하다가 귀국하기로 결정하였을 때 미국인 동료 교수가 우리 가족을 자기 집으로 초대해 주었습니다. 그분은 바쁜 생활 중에도 자기 집 뒤뜰에 있는 잔디밭 한쪽을 일궈서 채소를 가꾸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우리는 그 채소밭에서 상추와 고추, 토마토 등을 따서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인생의 귀한 교훈 하나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상추를 심은 곳에는 상추가 났고, 토마토를 심은 곳에는 토마토가 났고, 고추를 심은 곳에는 고추가 났으며 아무 것도 심지 않은 곳에는 잡초만 무성했습니다. 신약성경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정7절에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즉, 우리 개인의 삶에 있어서 무엇이 얼마나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은 심은 것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방정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순간)ji = (순간)1+(순간)2+..............(순간)t-1
시간 t에 있어서 j분야 삶에서의 여러분의 위치는 지나온 과거의 매 순간에 그 분야에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영어를 얼마나 잘 하느냐하는 것은 매 순간 영어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가에 달린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얼마나 아느냐 하는 것은 과거 매 순간 성경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가 하는 것은 과거 매 순간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이 교제하며 살았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간관계가 얼마나 원만한가 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과거에 얼마나 사랑과 용서를 심으며 살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사회 심리학자인 Kurt Lewin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직장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성과를 내는가 하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의욕(motivation)과 능력(ability)에 의해서 좌우된다.' 간단한 이야기같지만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제공해 주는 말입니다. <그림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두 변수를 가지고 다시 네 가지의 유형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림 2> 직장에서의 성장결정 요인
의욕 3) | 1) | | +--------------+----------------+ 능력 | | |
1. 능력도 대단한데 계속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
여러 해 전, 자마이카 태생으로 이민 1세대인 콜린 파월이란 흑인이 미 합참의장이 되었습니다. 신문들은 그가 만약 백인이었다면 대통령 감이라고 대서특필했습니다. 어느 날 그 분은 범죄와 빈민의 소굴인 뉴욕 할렘가에 위치한 자기가 졸업한 고등학교에 초청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4성 장군이 되어 리무진을 타고 금의환향하여 후배들에게 특강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특강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느 건설회사에 세 사람의 건설공이 있었답니다. 한 사람은 더운 땡볕에 나가 바보스러울 정도로 하루종일 열심히 땅을 파며 일을 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땅에 삽을 꽂고 다리를 걸친 채 '두고 보라고 내가 20년 후에 이 회사의 사장이 될 거야'라고 큰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세번째 사람은 감독만 사라지면 그늘에 가서 낮잠을 자고 저녁이면 일당을 받아가면서 '나는 종일 낮잠만 자고도 이렇게 일당을 다 받아간다'며 자랑했다고 합니다. 20년 후에 하루종일 땅을 판 사람은 그 회사의 사장이 되었고, 삽을 꽂아두고 사장이 되겠다며 큰소리쳤던 사람은 정신병원에 갔고, 나무 그늘에서 요령 피우며 낮잠 자던 친구는 20년 후에도 요령을 피우며 일당을 받아 가는 신세를 계속하고 있더랍니다.
그 다음 그분은 자기 경험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학 재학 시절 여름방학이 되어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구해 갔다고 합니다. 당시는 흑인을 대단히 차별하던 때였습니다. 아르바이트 일은 코카콜라회사의 청소부였는데 청소를 깨끗하게 해 놓으면 백인 친구들이 지나가면서 '이 검둥이야, 골탕먹어라' 하고는 더러운 물을 엎지르더랍니다. 그것을 닦아놓으면 또 엎지르고 그러기를 몇 번씩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끝내게 되었을 때 그를 유심히 관찰해오던 감독이 "이봐 콜린, 다음 여름방학 때 또 와. 내가 일거리 줄게." 고 말해주더랍니다. 다음 여름방학에 갔더니 청소 감독의 자리로 승진을 시켜주더랍니다. 또 다음 여름방학 때는 그 보다 더 좋은 자리를 주고요. "흑인으로서 오늘 합참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여건에 상관없이 그저 바보스러울 정도로 최선을 다하고 살았다는 것뿐, 다른 것은 없습니다" 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바로 열심히 심은 대로 거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느 한 시점에서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매 순간 한 발 한 발을 얼마나 착실하게 내딛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몇 해 전에 새로 입학한 대학원생 6명이 제 밑에서 논문을 쓰고 싶다고 찾아왔습니다. 사실 제가 학생들에게 굉장히 까다롭게 공부를 시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제 과목 한 강좌를 듣느니 차라리 다른 과목 둘을 듣겠노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렇게 다들 내게서 도망가는데 웬일인지 6명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5명은 학부에서 가르친 낯익은 얼굴인데 비해 1명은 전혀 모르는 학생이더군요. 알고 보니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야간대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더 하고 싶어서 모두 정리하고 대학원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제 소문을 익히 들은 그 학생은 주눅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저는 '걱정할 것 없다. 자네가 이 시점에서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네가 오늘부터 얼마나 한발 한발을 착실하게 딛고 나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격려해주었습니다. 그 학생의 실력이 1년이 지나자 놀랍게도 동료들과 비슷해졌습니다. 2년 뒤에 석사학위과정을 끝내고 박사학위 입학시험에서 그 학생만 합격한 것입니다. 지금 그 학생은 서울시내 모 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특히 젊은 여러분들, 지나간 세월을 한탄할 것 없습니다. 지금부터 어떻게 사느냐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여러분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직업은 우리 생활의 수단이 아니고 생활의 본질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가야 합니다.
저는 상급학교 입학시험 공부를 한번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진학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도 중학교 입학 시험치는 날 친구들을 따라 시험을 쳤습니다. 합격하였지만 합격자 발표하는 날 저녁 아버지가 물어 보셨을 때 저는 "떨어졌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돈도 없는데 잘 됐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시장 바구니 잔돈을 모아 제 입학금을 납부해 주셨고, 저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중등교육을 마쳤습니다. 고등학교 진학할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친구들과 함께 고등학교 진학시험을 쳤습니다. 다행히 합격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합격자 발표가 난 그 다음날 아침에 제 반 친구가 어머니를 모시고 제 집을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 어머니를 따라 그 집에 가서 맛있는 쌀밥과 고기국을 얻어먹고 제 합격한 특권을 그 친구에게 양보하는 각서에 서명해 주었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삭의 맏아들 에서는 팥죽 한 그릇을 얻어먹고서 장자의 명분을 동생 야곱에게 넘겨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는 고기국 한 그릇을 얻어먹고는 고등학교 합격증을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서 저는 정부가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직업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남들은 대학 입학시험 공부로 여념이 없을 때 저는 전보치는 법과 우편 취급하는 것 등을 배우며 3년 과정을 마쳤습니다. 영어, 수학, 국어 등은 1학년 때 이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 과정을 마친 후 9급 공무원 임시기능직으로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만나고 성경에 심취하게 된 것은 그 때였습니다. 많은 성경 말씀이 저를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 대로 거두리라"는 갈라디어서 6장7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여건이 너무 열악하여 "미래의 꿈" 같은 것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는 말씀대로 매 순간 무엇이든지 열심히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힘들고 버티기 어려웠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는 갈라디아서 6장 9절의 말씀과 같이 낙심하거나 집어치우지 않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최선을 다해 한발을 디디면 하나님께서 그 다음에 디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직업학교를 졸업한지 11년 후 제 아내가 대학교수가 되던 해에 저는 직장 생활을 하며 야간대학에 입학하여 나이 35세에 뒤늦게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해에 미국정부 장학금 시험에 합격하여 유학을 가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근본적으로 기초가 약했지만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과 같이 느껴지던 미국 대학원 과정도 단시일에 끝내게 되었고 John H. Edwards Fellow라는 최고의 영예까지 받으며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명문 학교라고는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던 제가 미국 MIT와 KDI에서 연구하게 되었고, KAIST와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가르친 후 지금은 고려대학에 재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보다는 열심히 살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더 중요하고 값진 것이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을 따라 열심히 살았지만, 심고 가꾼다고 저절로 거두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농부가 씨를 심고 잘 가꾸더라도 비와 햇빛이 적당히 공급되어야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가 열심히 살았지만 때를 따라 베푸신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가 없었다면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제가 저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김인수(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1965년 한미재단 장학생 선발시험의 마지막 부분이 영어작문이었다. "당신의 삶 중에서 가장 귀중한 경험 하나를 선택하여 그것을 중심으로 영작하시오"라는 제목이었다. 나는 주저함이 없이 곧 작문을 시작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안에서 자녀가 되고 그것이 왜 가장 귀중한 경험이었는가에 대해 두 장의 시험지를 가득 채우고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제안으로 내 글을 끝맺었다. "채점하시는 선생님이 누구신지 알 수 없지만, 선생님께서 아직 예수님을 모르신다면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귀한 경험을 갖게 되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이 필요 없다
나는 기독교 배경이라고는 가족이나 친척 중에 전혀 없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국민학교 2학년때 우연히 친구를 따라 근처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여 5학년까지 열심히 다녔다. 완벽주의적 성격을 가진 나는 결석을 한두번하게 된 것이 마음에 걸려 교회출석을 그만두었다. 그 후 체신고등학교 1, 2학년 때 타향인 서울에서 고학하게 되면서 외롭고 고생스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교회에 다시 나갔다. 그러나 곧 수학과 과학, 그리고 합리적 사고에 눈뜨기 시작한 나는 점점 신앙이 미신스럽고 광신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데다가, 내 눈에 비친 교회의 부조리와 교인들의 위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교회를 그만두게 되었다. "신앙이란 심약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허구이다. 나같이 의지가 강한 사람이 왜 여기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연연하기보다 보이는 현실에 충실하게 살자"고 마음을 분명히 정한 것이었다.
가정형편상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 말단공무원으로 취직했다. 18살의 어린 나이에 세상물을 먹기 시작한 것이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직장의 선배 공무원들 사이에는 음악감상, 당구, 놀음, 사교춤 등이 비교적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열심히 선배들을 좆아 다니며 그 삶을 배우고 있었다. 이러한 삶에 대해 회의를 느끼거나 마음의 갈등 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단지 가장 평범하게 그 당시의 세파를 따라 살아가면서 빠른 시일내에 세상적 경험을 많이 쌓아 어른의 모습을 갖추고 싶었을 다름이었다.
말씀으로 찾아오신 하나님
이러한 내 생활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1960년이었다. 같은 직장에 다니는 친구가 "영어로 성경공부하는 대학생 모임이 있는데 같이 가 보지 않겠느냐"고 권하는 것이었다. 몇 번 거절을 했지만 계속되는 권유에 못이겨 나가기로 정했다. 성경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영어를 공부한다는 것에 마음이 끌렸었다. 그 당시 내가 다니던 직장에서는 외국과의 통신이 필요했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했다. 나는 "대학생들이 영어를 하면 얼마나 할까?" 하는 깔보는 마음을 가지고 그 모임에 갔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15여명 정도의 대학생들이 귀를 의심할 정도로 유창하게 영어로 토의하는 것이었다. 전혀 다른 세상을 접한 나는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매주일 열심히 나가 영어공부를 하기로 하였다. 그 모임이 자라 지금은 조이선교회라는 이름의 청년선교기관이 되었던 것이다.
매주 계속되는 선교사의 설교, 회원들의 3분 스피치, 미리 정한 주제에 대한 영어 토론 등으로 3시간 정도의 회의가 마쳐지는 것이었다. 설교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럴듯한 이야기야, 그러나 저런 것은 마음이 약하고 자기 문제를 처리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지 나같이 의지가 강하고 자기 일을 분명히 처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런데 회원들 중 세 사람이 나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그 세 사람중의 하나(김수지)가 바로 지금의 내 아내이다. 그런데 내 속에 의문의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명문대학을 다니며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대부분의 회원들이 결코 어리석고 심약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바보스럽게 예수를 믿을까?" 그들은 내가 옛날 교회에서 보았던 위선적 교인이 아니었다. 삶의 가치가 분명히 바르게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한 그들의 신앙과 삶은 내게 기독교에 대해 다시 알아보도록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저 친구들이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을 모르고 살아왔는지를 분명히 정리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 물어보기가 싫었다. 아마 누가 내게 상담을 제의했어도 응하지 않았을 것 같다. 내 스스로 기독교의 진리가 담겼다는 성경을 통해 직접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이즈음 나는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신약성경 한권을 들고 논산훈련소에 갔다. 훈련시간 사이의 휴식 시간에도 성경을 읽었다. "하나님, 정말 당신이 계십니까? 일단 당신이 계신다고 가정을 하고 성경을 읽겠습니다. 참으로 당신이 계시면 내게 나타나 주십시요" 하고 기도하고는 성경을 읽었다. 예전 주일학교 다닐 때에도 성경을 읽어보려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한번도 그 지루한 마태복음 1장을 넘겨 본 적이 없다.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고" 생경한 긴 이름들의 나열은 나로 하여금 성경읽기를 그만두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드디어 마태복음 1장을 끝내고 2장으로 넘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신약성경을 3개월만에 처음으로 독파했다. 두번째에는 2개월만에 읽었다. 미군유류병참학교 훈련기간 중에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성경을 읽었다. 첫 1년반 동안에 아마 30번 정도는 읽은 것으로 기억한다. 신약성경 전체를 8일만에 읽어내기도 했다. 오랜 기간 동안 천천히 공부를 하면 새로 배우는 것과 잊어버리는 것이 비슷하기 때문에 머리에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는데 비해, 단시일내에 엄청나게 읽게 되니 공부가 많이 되었던 것 같다. 공부란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많이 해야 효과가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때만 해도 기억력이 대단히 좋았던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읽은 성경의 모습이 눈에 훤하게 남아 있었다.
반복하여 성경을 읽으면서 나는 성경의 깊은 가르침에 빨려들기 시작하였다. 빨간 펜을 들고 마음에 드는 구절에 줄을 쳤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구절 위에는 물음표를 쳐 두었다. 처음에는 윤리도덕적 가르침에 마음이 끌려 그런 구절에 밑줄을 쳤다. 여러번 읽으면서 물음표를 쳤던 부분에 대한 해답을 다른 구절에서 발견하고 물음표를 지울 수 있었다. 비슷한 구절이 여기저기 많았다. 나는 큰 노트를 하나 사서 앞으로 성경을 읽게 될 후배들을 위해 그 구절들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나중 서점에 가보았더니 [성경사전]이 벌써 나와 있었다. 그때만 해도 신앙서적이 별로 없던 때이라 오직 성경만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후일 나에게 큰 축복이 되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받지 않고 혼자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깨닫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성경에서 발견한 기독교는 주일학교와 고등부에서 7년정도 배우고 경험했던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교회가 잘못 가르쳤거나 내가 잘못 배운 것이다. 지금도 기독교와 교회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성경을 읽으라"고 권한다. 성경을 깊이 읽지 않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주일에 한두번 나가는 교회의 설교에 의존해서는 신앙이 자라지 않는다. 한쪽 귀로 들은 것은 다른 귀로 다 흘러나가 버린다. 하나님께서도 야고보 1장 22-25절에서 듣고 돌아서는 자는 잊어버리는 자요 말씀을 들여다보는 자가 참으로 행하는 자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어느 분이 내게 "콩나물은 위에서 물을 주면 밑으로 다 흘러내리지만 자라지 않느냐"고 반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속 그런 식으로 물을 주면 조금만 자란 후 곧 썩어 버린다. 말씀을 듣기만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면 20년 이상을 교회 다니고도 경건의 능력이 없는 성도가 되어 교회를 어렵게 만드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성경읽기가 거듭되면서 점점 신앙적 부분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가장 어려웠던 것 중 하나는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었다. 오래동안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의 상대적 개념에서 나를 보았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절대적 기준으로 보게 될 때 우리는 본질적으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다음 어려웠던 것은 2천년 전 유대 땅에서 태어난 목수의 아들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납득되지 않았다. 정말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면 사도행전 9장에서 예수님이 바울에게 나타났듯이 내게도 나타나 보여달라고 하나님께 계속 기도하였다. 그러나 그런 기적은 내게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과정에서 로마서를 읽게 되었다. 1장에서는 이방인이 죄인임을 선언하고 있고 2장에서는 유대인도 죄인임을 선언하고 있다. 3장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을 선언하고 있다. 그 다음 3장 20절-24절 말씀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되는 가장 중요한 약속의 말씀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도저히 다 지킬 수 없는 율법을 통하여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 그 다음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길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차별없는 길을 주셨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되는 것이다. 그 외에도 다른 여러 성경 구절들이 내게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나는 생활의 위기를 당하여 하나님을 찾게 된 것도 아니다. 누가 전도해서 예수를 믿게 된 것도 아니다. 혼자 성경을 읽다가 그 말씀의 약속이 사실임을 믿고 받아들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고 선언한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같이, 나는 첫째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둘째 하나님을 내 중심에 받아들였다. 즉, 이제는 세상적인 내가 내 삶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돌아서기로 결정한 것이다. 3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기적을 보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말씀의 약속을 받아들여서 믿게 된 것을 감사한다. 왜냐하면 믿음에 의심이 생길 때마다 나는 내게 확신을 주었던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서 그 구절을 읽음으로써 그 때의 감격을 다시 재생시킬 수 있고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을 다시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기적을 보고 믿게 되었다면 그 기적을 다시 재생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탄이 만약에 "그 기적은 사실이 아니라 환상이었다"고 속삭인다면 방어할 방법이 없겠기 때문이다.
기억력이 대단히 좋았던 그 때에 많은 성경 구절들을 암기하게 되었고 그 구절들이 그 동안 나의 삶을 멋있게 살 수 있도록 지켜주는 빛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노년기에 접어 들은 지금도 내 삶의 맑은 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일찍 믿을 것 없다. 세상 재미를 마음껏 즐기다가 노인이 되어서 믿어도 천국가는 것은 마찬가지다"고 느긋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 풍조에 휩쓸려 인간의 정욕에 찌들고 초점없이 살다가 노인이 되어서는 지적인 분별력이 쇠퇴함으로써 믿는 것이 무엇인지, 믿는 생활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게 된다. 나는 �은이들에게 머리가 명석한 젊은 시절에 여호와 하나님을 깨닫고 그의 말씀으로 무장하게 되면 평생 동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체적으로 경험하며 기쁨으로 살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들의 행전
이렇게 시작한 내 신앙생활은 향략을 추구하며 무엇이나 거머쥐려고 하던 이기적인 내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돕고 주는 삶으로 바꾸어 놓았다. 군대 3년 동안의 생활에서 하나님께서는 가난하여 학교에 가지 못한 청소년들을 모아 야학 사역을 하게 인도하셨다. 그 과정을 통하여 많은 청소년들이 공부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갖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삶의 기쁨을 경험하게 하셨다. 미래의 삶을 같이 하기로 약속한 지금의 내 아내는 이 과정에서 마음의 후원자요 믿음의 동반자로서 항상 격려와 기도를 아끼지 않았다. 그 때 내 아내와 나누었던 편지들이 최근에 [우리들의 아가서]라는 제목으로 두권이 출판되었다.
내가 아내와 결혼하게 된 것은 1966년 5월이었다. 미국 유학을 가서 좋은 장학금을 받고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던 아내에게 나는 "약속대로 나와 결혼하려거든 유학을 그만두고 귀국했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내 편지를 받고서 아내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귀국하였다. 대학을 나오고 유학을 갔던 아내는 대학도 가지 못하고 하숙값이 안되는 월급으로 고전하고 있던 나와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귀국하였던 것이다. 참으로 믿음을 가진 마음이 큰 여자라고 생각한다. 결혼 후 아내는 서울외국인학교의 보건교사로 일하면서 중단했던 대학원 공부를 계속하게 되었다. 나는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기고 싶어도 대학 졸업장이 없어서 원서를 낼 기회조차 얻지 못하다가 학력을 묻지 않는 외국대사관에 응시하여 많은 대학 졸업 경쟁자를 물리치고 행정 책임자로 발탁이 되어 일하게 되었다. JOY선교회에서 닦은 영어실력 덕분이었다. 나는 2년 동안 근무한 후 부당하게 고생을 하게 된 부하 직원을 옹호하는 과정에서 부대사와 충돌이 생겨 사표를 내게 되었다.
실직을 한 3개월 동안 아내는 매일 출근을 하고 나는 종일 집에 있었다. 나를 아끼던 미국인 선교사들이 영어신앙서적을 번역하는 일거리를 얻어주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말 신앙서적들이 별로 없을 때였다. 나는 많은 영어신앙서적들을 빌려서 읽었다. 3개월 동안 얼마나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신학적으로 잘 정리된 신앙서적을 접하면서 수년동안 읽었던 성경말씀이 체계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성격적으로 항상 바쁘게 살아가는 나를 보시고 안타깝게 여기신 나머지 그 3개월 동안 내 삶을 정지시키시고 필요한 훈련을 시키신 것 같다. 왜냐하면 그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독학으로 신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성경을 많이는 알고 있었지만 남에게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준비는 되어있지 않았다. 그런데 실직 3개월을 보낸 후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참으로 기묘하신 하나님이다.
3개월의 실직을 끝내고 나는 극동방송국의 견습사원으로 취직했다. 신앙적으로 헌신한 사람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러날 기도하며 생각해 보았다. 기술 면허가 없으니 기술자로 갈 수 없고, 음악을 전혀 모르니 방송요원이 될 수도 없었고, 경상도 사투리가 남아 있으니 아나운서가 될 수도 없었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부분이란 행정인데 그 부분은 좋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서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은사로 보았을 때 내가 가서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하나님께서 계속 구체적인 부담감을 내게 주시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지만 당신이 보내시겠다면 가겠습니다" 이렇게 응답하고 극동방송의 견습 프로듀서로 일하게 되었다. 그것이 1967년이었다. 그런데 가장 신임을 받았던 행정간부들이 큰 음모를 꾸미고 있었고 그것이 조금 노출되면서 외국선교사들은 그 문제를 파헤치고 수술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직원중 그런 행정 경험을 가진 사람이 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입사한지 몇 개월도 되지 않아서 나는 방송국의 행정 문제를 수술하고 체계를 잡는 막대한 책임을 부여받게 되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선배들의 문제를 파헤쳐 과감하게 수술한 후 체계를 잡기 시작했다. 기도와 하나님이 동행하신다는 말씀의 확신 없이는 해내기 어려운 책임이었다. 나는 대사관에서 2년 동안 행정 책임자로서 쌓은 경험을 있는 대로 다 발휘하여 행정 체계와 회계 제도를 정립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준비였다. 이 과정에서 나는 견습사원으로 입사한지 3년만인 30대초에 부국장 (지금의 부사장)에까지 승진하게 되었다. 15년 이상을 근무한 선배들의 위에 올라가서 일해야 했던 나의 기도는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하는 디모데전서 4장 12절의 말씀이었다.
1968년초 아내는 이화여자대학의 전임교수가 되었고 나는 바로 그해에 극동방송에 근무하면서 야간 국제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내가 출장을 가면 아내는 내 대신 강의실에 들어가 필기해 주었다. 이화여자대학의 동료 교수와 강의실에서 마주치는 경우도 있었다. 아내는 남편이 자라는 일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졸업식에는 딸과 아들까지 와서 뒤늦은 아빠의 졸업식에 참석해 주었다. 졸업하던 1971년에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여비와 학비와 생활비까지 다 포함된 미국정부가 주는 동서문화센터 장학생으로 합격할 수 있는 기적을 베풀어 주셔서 하와이 대학으로 가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부부가 "우리들의 미국행전"이라고 부르는 유학 생활의 시작이었다. 나로서는 국민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일하지 않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직업고등학교를 나온 후 야간대학을 다닌 내가 바로 미국대학의 대학원 과정에 입학하였으니 그 충격은 말할 수 없었다. 경제학이나 통계학 같은 과목은 전혀 수강하지도 못하고 대학원에 들어갔으며, 한국에서 몇 과목 듣고 갔던 회계학 과목은 첫 시간 시험에서 전체 꼴찌인 20점을 맞았으니 그 때에 내 심경은 말이 아니었다. 강의 내용이 무엇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도 없었다. 나는 아침 8시부터 밤12시까지 매일 쉬지 않고 공부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선배 한국 학생들을 붙들고 물어보았다. 아이들과 아내의 격려와 기도가 큰 도움이 되었다. 열심히 공부한 결과로 첫 학기에 택한 모든 과목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게 되었다. 그 때에야 겨우 "국제무대에서도 경쟁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내 심령이 메말라 가기 시작했다. 공부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하나님과의 개인적 교제를 갖는 시간이 적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 다음 학기부터 우선순위를 바꾸기로 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성경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먼저 갖기로 했다. 아침 8시에 도서관에 가서 먼저 성경을 펴놓고 읽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30분, 어떤 때는 말씀이 너무 달아 그만 둘 수 없었다. 1시간 2시간씩 또는 오전 내내 성경만 읽었다. 다시 내 심령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둘째 학기의 성적이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때부터 동료 대학원생들을 모아서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그러한 성경공부는 유학기간 동안 어디를 가든지 계속되었다.
석사학위만을 받고 돌아 올 예정이었던 내게 하나님께서는 학부 3학년 전공과목을 하나 가르치는 조건의 좋은 장학금을 받아 경영학의 명문인 인디아나대학에서 박사학위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다. 한국에서 야간대학을 졸업한지 2년 만에 미국대학에서 전공과목 강의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통지를 받았을 때만 해도 내가 가르쳐야 하는 과목인 생산관리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도서관에 가서 그 분야 교과서를 펴 보고 당황해 하며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7개월 만에 박사과정을 끝낼 수 있었고 최고의 영예까지 받게 된 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하와이대학에서 시작한 대학원생들과 함께 시작한 성경공부반은 나중에 교회의 청년부로 발전하였고, 내가 성경공부를 가르쳤던 중고등학생들 중에 5명이나 목사로 헌신하게 되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여러해가 지난 후 그 교회의 목사님께서 "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목사로 키우면서 자기는 목사가 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인디아나에서 시작한 셩경공부반은 나중에 자라서 교회가 되었고 몇 년전 그 교회가 10주년을 맞아 우리에게 감사패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내가 공부를 끝낸 후 MIT공과대학에 직장을 얻어 보스톤에 갔을 때였다. 2월에 박사학위 입학생 심사가 다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8월에 내가 아내의 원서를 가지고 간호학의 명문인 보스톤대학에 갔을 때에 왜 문제없이 접수가 되었는지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신다. 무슨 이유로 강의가 시작되는 9월1일 오전에 세 교수와 면접한 후 입학이 허가되고 전액 장학금을 받았으며 그날 오후부터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되었는지 생각할 수록 설명이 불가능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2년8개월 후 아내가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간호학 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 왜 그 장학 제도도 때를 같이하여 끝나게 되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아신다.
나와 내 아내가 대단히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귀한 공부를 끝까지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받은 교육을 우리 욕심을 채우는 데 사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확신을 일찍부터 갖게 되었다. 우리가 1978년에 귀국하여 한국사회와 교회의 현실을 파악하게 되자 곧 내가 전공했던 경영학의 조직행동론과 아내가 전공했던 간호학의 정신간호학의 공통분야인 심리학과 사회심리학을 바탕으로 우리 문화와 현실에 맞는 가정사역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보급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섬김의 사역이며 이를 위하여 필요한 준비를 시켜 주신 것이다.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복원시켜 주는 크리스찬 부부생활 워크샵, 자녀들을 하나님과 사회 앞에 부끄러움 없는 모습으로 키우도록 부모를 돕는 크리스찬 부모학교가 바로 이러한 결과로 만들어진 사역들이다.
학생으로 공부만 할 때나 사회적 책임이 많지 않았을 때에는 시간을 정해서 성경공부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책임이 많아짐에 따라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요사이는 일주일에 4번 정도 성경공부를 인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있게 접하게 된다. 내가 인도하는 모임이니 결석할 수 없어서 매번 빠짐없이 참석하게 되고, 이를 위하여 깊이 묵상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깊은 진리와 사랑을 깨닫게 된다.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이렇게 계속된 성경공부는 내 삶에 큰 유익을 주고 있다. 성경 말씀은 내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내 믿음을 확증해 준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내가 가진 믿음의 약속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나와 함께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해 준다. 또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그 뜻에 순종하여 살 때 우리에게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 내 마음이 가장 맑아지는 것을 느끼며 그 때에 "인간의 참 행복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이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한다. 가 보아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 오시니 그곳이 곧 천국이라는 말씀을 이해할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이 제대로 다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푸른 초장에 누워 있을 때에나, 잔잔한 물가로 인도를 받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에나 원수의 목전에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않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찌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할 수 있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한다. "우리 마음의 참 평안은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한 허드슨 테일러의 글이 생각난다. 죄와 사망, 불안과 공포, 염려와 욕심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고, 감사와 기쁨, 화평과 찬송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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