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소재

옥성호 -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보며 -

ToBeIsToChange 2009. 1. 28. 09:48

http://rnrbook.com/에서 퍼옴

 

 

 

「며칠 전 한겨레 인터넷 신문의 헤드라인(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33645.html )은 한국 기독교의 근본주의를 비판하는 기사였습니다.

 

'왜 유독 한국 기독교는 세계적 추세와 달리 기독교 신앙을 다원적이고 상대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비판 기사였습니다. 이 기사 속의 다른 부분들은 다 빼고 이 부분만을 놓고 본다면 근본에 충실한 한국 기독교는 분명 하나님 앞에서 필라델피아 교회나 서머나 교회와 같이 칭찬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변함없이 속히 오실 예수님이 주실 '생명의 관'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기사를 읽고 지금 세상이 한국 교회가 '다원주의적 추세'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비판한다고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지금 한국 교회에 묻고 있는 질문은 다음의 질문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너 정말로 너가 하는 말을 믿느냐?"

 

세상은 나그네이고 천국이 본향이라면서 너는 왜 세상에서 집을 여러 채 못 사서 난리인데? 왜 교회를 더 크게 못 지어서 난리인데? 너는 왜 잘 나가는 정치인과 사진을 한 장 같이 못 찍어서 그렇게 안달인데? '주의 길'이 그렇게 힘들다면서 그걸 왜 아들 못 시켜서 그렇게 난리인데?

 

세상은 한국 교회가 주장하는 근본주의 신앙의 구호와 겉으로 드러나는 행태 사이의 너무도 큰 차이에 대해서 우리에게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볼 때.... 너희들 짝퉁인데 이제 고집 좀 그만 부리고 스스로에게 좀 진실해지면 어때?" 라고 충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엘 오스틴은 이번 아프칸 사태를 보고 다음과 같이 얘기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제가 잘 이해가 안 가는 민족이 한국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 제 책 엄청 좋아하거든요. 한국 그 조그만 나라에서만 백만 부가 훨씬 더 넘게 팔려서 출판사에서 제 얼굴을 새긴 금으로 만든 책갈피 끼워주는 이벤트도 했어요. 그런데 왜 내 책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동시에 아프카니스탄에 가는지....잘 이해가 안 돼요. 한국 사람들....내 책을 너무 열심히 읽은 것 같아요. 너무 ‘긍정적’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건 제 책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잘 살라고 그 책을 쓴 것이지 사서 고생하라고 쓴 게 아니에요. 긍정적이 되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저는 양잿물 마시면 마시지 그런데 절대 안 가거든요. 주변에서 저보고 이라크 가서 군인들한테 긍정적 메시지 좀 선포하라고 얼마나 닦달인지 몰라요. 미쳤어요? 내가 거길 가게? 저는 또 서로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라고 그 책을 쓴 것이지 자기 혼자 잘 난줄 알라고 쓴 게 아니에요. 이번에 한국에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가서 제대로 얘기를 해 줘야 할 것 같아요. 어떻게 내 책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아프카니스탄 같은 곳을 갈 생각을 하는지....어떻게 이 두 가지가 양립하는지 이해가 잘 안가는군요.”

아프카니스탄 선교와 각종 ‘자기계발 신앙 서적’이 동시에 모순 없이 양립하는 이 한국 교회의 현실은 상식을 가진 교회 밖에 사람들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럼 여기서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한국 교회가 정말 '근본주의 신앙'에 충실합니까?('근본주의'라는 용어를 여기서는 단순히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정도로만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한국 교회는 근본주의 신앙의 '껍데기'에만 충실할 뿐입니다.

그 껍데기가 무엇입니까?

 

대표적인 몇 가지로,

 

담배, 술, 십일조, 주일 성수 그리고... 요즘 와서 새로 추가된 새벽 기도 참석과 QT 매일 하기...

 

껍데기로 남는 신앙의 특징은 신앙이 단순한 "to do list" 로 전락한다는 점입니다. 할 것을 다 한 날은 아주 하나님과 가까워진 날이지만 못한게 몇 개 있는 날은 아주 주님이 멀게 느껴지는 그런 날이 되지요.

 

문제는 이런 to do list 들에 충실한 많은 사람들이 교회 속에 교묘하게도 아니, 아예 노골적으로 들어오는 각종 세상의 조류들을 분별하는 데에 매우 취약합니다.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논리로 정치계의 급진 좌파보다 더 심하게 세상의 각종 기법들을 교회 속에 받아들이면서 위에서 거론한 몇몇 분야에 있어서는 우파 수구 꼴통이 무색할 정도로 고집을 피우는 이 아이러니한 현실이 '조엘 오스틴에 대한 사랑'과 '아프카니스탄 선교'에 대한 열망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우리의 오늘입니다.

 

(샘물 교회는 조엘 오스틴의 가르침을 저처럼 싫어하는 교회일 수 있습니다. 그냥 전반적인 상황을 위한 일반화로 이해해 주세요. 그리고 조엘 오스틴은 단순히 그 한 사람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참석한 한 집회의 구호가 "변화를 받아"였습니다. 그리고 집회의 주제 성구가 로마서 12장 1,2절이었습니다. 주제 찬양도 로마서 12장 2절의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를 가사로 한 노래였습니다. 참석자들은 집회 내내 "이 세대를 본받지 말자"라고 소리 소리 치면서 주제 노래에 맞춰 펄쩍 펄쩍 뛰면서 부르는데... 제가 보기에 그 모습이 이미 세상을 본받은 모습 이상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전자 기타에 요란한 드럼에 펄쩍 펄쩍 뛰며 헤드뱅잉에 가까운 몸짓으로 노래하는 모습... 그것이 찬양의 모습입니까? 백 뮤직이 깔리지 않으면 분위기가 안 잡혀 기도가 잘 안 되는 오늘의 교회가 이미 세상을 본받은 모습이 아닙니까? 세상이 너무 깊이 교회 속에 들어와 이제는 무엇이 교회이고 무엇이 세상인지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요즘 교회는 전체 예산의 최소 어느 정도를 사회 구제와 복지에 써야 욕 먹지 않습니다. 교회가 오죽 비참한 상황이 되었으면 그런 통계를 굳이 말해야 하며 또 그게 자랑이 되는 세상이 되었습니까? 그러나 사회 복지는 나라가 해야 정상입니다. 교회가 나서서 할 영역이 아닙니다. 사회 복지를 제대로 나라가 구현하도록 필요하면 교회가 세금도 내고 또 교인들이 제대로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 오히려 더 바른 방법입니다. 또한 사회 복지를 제대로 구현할 바른 지도자를 지지하는 것이 교회의 책임일 것입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교회는 '경제'보다도 '윤리'를 우선시하는 지도자를 지지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교회 전체 예산의 80%를 사회 복지에 투자를 하는 교회가 전혀 '윤리적'이지 않은 지도자를 지지한다면... 근시안적 자기 모순일 뿐 아니라 코메디지요.

 

우리 주변의 교회의 모습을 조금만 주의 깊게 보아도 우리는 한겨레 신문의 주장과는 달리 우리는 전혀 '근본주의적'이지 않습니다. 근본주의적인 '껍데기'만 갖고 있습니다.

 

만약 오늘날 우리가 일본에 의해 다시 식민지가 되고 다시금 천황에게 절하라는 명령을 받는다면... 아마 많은 교회들이 앞장서서 신사 참배를 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신사 참배 역시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보고 수용 못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일본인들을 좀 더 효과적으로 전도하기 위한 유연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입으로는 여전히 "예수만이 진리이다" 라고 고백하겠지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제대로' 근본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독교 진리에 있어서 근본주의가 아니라면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근본주의가 아니라면 우리는 지금도 또 앞으로도 핍박받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약속하신 것들이 있습니다. 말세에 당할 핍박과 더불어 크리스천은 본질적으로 미움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근본주의가 되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와 상관없는 딴 세상 얘기가 되겠지요.

 

지금 우리가 받는 것은 탄압이 아니라 조롱입니다.

이 점을 잘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조롱이 핍박이 되도록 제대로 근본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삶과 고백이 일치할 뿐 아니라... 'to do list'에 연연한 신자가 아니라, 기독교 진리가 주는 '자유함' 속에서 '깊음'을 누리는 제대로 된 근본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비록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더라도 결코 경멸하지 못하는 세상의 적이 되어야 합니다. 존경받는 적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과 친한 친구가 되려는 데 연연한 교회는 세상의 존경을 받는 적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받기는 쉬워도 존경받기는 어렵습니다. 교회는 이제 세상으로부터 사랑받는 쉬운 길을 버리고 존경받는 어려운 길을 택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 폴리캅은 순교했습니다. 그를 죽인 로마는 폴리갑을 미워했지만 그를 조롱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를 죽이면서도 마음 속 깊이 폴리갑을 존경했습니다. 그가 목숨을 바치는 그 종교에 대해 경외감을 가졌습니다.

 

힘든 봉사와 선교의 길을 감당하고도 욕을 먹는 교회와 많은 형제 자매들을 보면서 '핍박' 대신 '조롱' 받는 한국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절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과정에서 피를 흘린 귀한 형제들의 가정을 위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교회가 하나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고 회개하는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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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joyhope   2007/09/08 14:41
균형잡힌 지적에 감사합니다.. 제대로된 근본주의자, 세상이 미워하더라도 결코 경멸하지 못하는 세상의 적.. 잊지 않겠습니다..
pauljoyhope   2007/09/08 14:49
제가 섬기는 축제교회 홈페이지( www.jesusfestival.org )에 '제대로된 근본주의자'라는 제목으로 소개했습니다.
pauljoyhope   2007/09/13 11:49
사랑하는 옥성호 형제님.. 책과 이곳을 통해서 많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pauljoyhope   2007/09/13 11:52
질문 - 조엘 오스틴이 아프칸 사태를 보고 한 이야기는 그가 그렇게 이야기를 한 것인가요. 아니면 오스틴이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는 건가요.. 사료된다고 하셔서..
sunghooak   2007/09/13 21:48
죄송합니다. 오해의 여지가 있지요? 위의 글은 그의 평소의 사고체계를 봤을때 나왔을법한 저의 상상입니다. 그런데 9월 8일에 다음의 기사가 나왔습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2877790.html?ctg=1200
pauljoyhope   2007/09/14 10:56
고맙습니다..^^
joybt   2007/10/07 18:24
정말 조엘오스틴 목사다운 답변이네요ㅎㅎ 내년에 한국에 온다니 너무 두렵군요. 하나님께서 막아주셨으면...
azugari   2008/07/06 16:33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