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Lewis

C.S.Lewis - 고통의 문제 中 ,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유

ToBeIsToChange 2006. 4. 17. 07:40

 

불과 몇년 전 제가 무신론자였을 때 "왜 하나님을 믿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다면, 대략 이런 식의 대답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보세요. 그 대부분이 완전히 어두울 뿐 아니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추운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공간과 비교할 때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천체들은 수도 너무 적을 뿐 아니라 크기도 너무 작아서, 설사 모든 천체가 완벽하게 행복한 생물들로 꽉 차 있다 해도 그런 생명과 행복이 우주를 만든 힘에게 일종의 부산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보기는 여전히 어렵지요. 그런데 사실 과학자들은 우주의 태양들 중 극소수만이 - 어쩌면 우리가 보고 있는 태양만이 유일하게 - 행성을 거느리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태양계만 보더라도 지구 외의 다른 행성에는 생명체가 살고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더구나 지구도 수백만 년 간 생명체 없이 존재했고, 이 생명체들이 다 사라진 후에도 또 그렇게 수백만 년 이상 존재할 겁니다.

 

생명체가 있을 동안의 사정은 또 어떻습니까? 모든 형태의 생명체는 서로를 먹이로 삼아야만 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하등한 형태의 생명체에게는 그저 죽음으로 이 과정이 끝나 버리지만 고등생물의 경우에는 의식이라는 새로운 특질이 나타나 고통을 느끼게 만들지요. 그 생물들은 고통을 일으키며 태어나, 고통을 가하며 살다가, 대부분 고통 속에 죽습니다.

 

가장 복잡한 형태의 생물인 인간에게는 이성이라는 또다른 특질이 나타나 자신의 고통을 예견하게 함으로써 실제 고통이 닥치기도 전에 예리한 정신적 고통을 먼저 겪게 할 뿐 아니라, 영원을 간절히 열망하면서도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며 살 수밖에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또 인간은 이성을 통해 교묘한 책략들을 많이 꾸며 냄으로써, 이성이 없었을 경우 다른 인간이나 이성이 없는 생물들에게 가했을 고통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성의 힘을 한껏 써먹었습니다. 그들의 역사는 대부분 범죄와 전쟁과 질병과 테러의 기록으로서, 그 사이사이 끼어 있는 행복이라고 해봐야 막상 행복을 누리고 있을 때에는 그것을 잃으면 어쩌나 노심초사하게 만들고, 행복을 잃고 난 후에는 쓰라라리고 비참한 심정으로 과거의 기억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가끔 상태가 나아지면 이른바 문명이라는 것이 등장하지요. 그러나 모든 문명은 사라지게 마련이고, 지속되는 동안에도 인간이 늘상 겪는 고통들을 덜어주는 측면보다는 그 문명이 고유하게 양산해 내는 고통을 가중시키는 측면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문명 또한 그런 작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이 문명 또한 이전의 문명들처럼 사라질 것이 분명하지요.

 

설령 사라지지 않는다 해도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인류는 어차피 파멸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주 어느 곳에 생겨난 종족이라 해도 결국은 다 파멸하고 말 것입니다. 사람들의 말처럼 우주는 쇠락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저온 상태에서 동형 동질의 무한지대가 되어버릴 겁니다. 그간의 사연들은 전부 무(無)로 돌아가 버릴 테고, 모든 생명이란 결국 무한한 물질이 그 천치 같은 얼굴을 별 뜻 없이 잠깐 찡그린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입증되겠지요.

 

당신이 이런 우주를 자비롭고 전능한 영의 작품으로 믿으라고 한다면, 저는 모든 증거가 오히려 정반대의 결론을 가리키고 있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즉 우주의 배후에는 어떤 영도 존재하지 않거나, 선과 악에 무관심한 영이 존재하거나, 악한 영이 존재하거나, 셋 중에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문제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비관론적 주장이 설득력 있고 유창한 만큼, 그 즉시 제기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만약 우주가 그토록 나쁜 곳이라면, 아니 제가 말한 바의 반만큼이라도 나쁜 곳이라면, 사람들은 어떻게 그처럼 나쁜 것을 지혜롭고 선량한 창조자가 만들어 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인간들이 바보라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아무리 바보라 해도 그 정도까지 어리석을 수는 없습니다 .검은 것에서 흰 것을, 악의 꽃에서 덕의 뿌리를, 무의미한 작품에서 무한히 지혜로운 장인을 곧바로 유추해 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인간들이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을 우주의 실제 모습을 종교의 근거로 삼았을 리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다른 출처를 통해 종교를 갖게 되었을 것이고, 우주의 실제 모습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종교를 견지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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