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yn Lloyd-Jones

[스크랩] 영적침체 3장 `사람과 나무같은 것들의 걸어가는 것`

ToBeIsToChange 2009. 1. 17. 22:22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보이느냐 물으시니 "사람이보이나이다 나무같은것들의 걸어가는것을 보나이다"하거늘 그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보더니 나아서 만물을밝히보는지라

 

마가복음 8:22-26절 눈먼이를 고치시는 장면에서 보면 말한마디로 단번에 고치실 수 있으신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은 절차를 변화시켜 한 번에 고치시지

않은 것은 예수님의 깊은 사려와 목적이 있으셨음인데 제자를 위해,즉 제자 자신들이 어떤 영적상태의 자들이라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라 봅니다.

 

우리중에는 위 치유과정 앞단계처럼 완전히 보지 못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의, 보고 또 보지 못하는 기독교인이 많습니다.

다른이도 또 자기자신도 그렇게 느낍니다.

 

세상 향락을 이젠 멀리 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삶에 영구적 만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예수가 유일한 소망이시며, 아무래도 구세주라는 깨달음까지는

도달하여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재미를 붙이고 있으면서도 그는  아직 슬프게도 예수로 인한 행복과 기쁨을 느낄만큼 충분하지는 못합니다.

아직 혼란되어 있고 분명히 보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첫째로 원리들(그리스도의 사망과 그 절대적 필요성,중생의 교리)들을 분명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구세주'일 뿐 '확실히 구세주'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둘째로 기독교와 기독교인의 위치에서 자신의 행복을 실제로 발견치 못한 자들입니다.

셋째로 의지가 흔들리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의 적용의 문제에 이르면 분명치 않습니다.

 

이러한 예도 아니오도 아닌 막연한 상태의 원인은,

첫째, 이들은 종교적 사상의 명쾌함과 확실성을 싫어합니다. 결정을 불편해합니다.

둘째,성경의 가르침과 권위를 완전히 승복치 않습니다. (문제의 최대원인입니다)

성경의 진리와 자신들의 사상을 혼합하거나 성경을 가감합니다.

셋째, 교리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성경주해는 좋아하지만 교리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교리는 죄를 일깨우고 결단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성경교리는 정당한 순서대로 취하여야 합니다(속죄→중생/칭의→성화)

 

 

☞치료책은 무엇입니까?

1.분명히 보기도 전에 '내가 보나이다'라고 성급히 선언하지 않는 것입니다.

2.절대적으로 소망이 없는 것처럼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고 자포자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치료책은? 3.절대적 정직입니다.

위의 사람이 구원받은 것은 그의 절대적인 정직이었습니다.

"예, 저는 봅니다. 그러나 저는 나무와 같은 것들의 걸어가는 것 같은 사람들을 보고 있습니다."

이 사람처럼 우리는 자신에게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물음을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정직하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조치는 자신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일입니다. 주님께 나아가는 것,매달리는 것, 간구하는 것.

주님은 간구를 들어주시기를 약속하십니다. 더이상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불확실한 기독교인이 아니도록.

 

출처 : 행복까페
글쓴이 : 뵈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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