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후일담
- "루이스의 생각.성향.말투가 내 삶에 스며들었다"
《예기치 못한 기쁨》은 번역자에게 적잖이 ‘예기치 못한 기쁨’이었다. 번역자로서의 경험이 일천한 내게 이런 좋은 책이 떨어지다니, 처음에는 황감하고 감사하다는 느낌이었다. 더구나 나는 단순히 좋은 글이 아니라 믿음공부가 될 수 있는 글을 만져 보고 다듬고 싶은 욕심이 있던 차였다.
그러나 그 예기치 못한 기쁨이란 게, 루이스가 말하는 바에 따르자면 찌르는 듯한 ‘아픔’을 동반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짐짓 의뭉스럽기조차 한 루이스의 자서전이니 쉽지 않으리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문의 느낌을 온전히 전달하기도 힘들다는
원론적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해를 돕기 위해 역주를 달다 보니 엄청나게 늘어나는 그 분량도 만만치 않아서 오히려 가독성을 해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초고의 역주는 200개가 넘었으나, 편집과정에서 가볍게(!) 100개 정도로 줄어들어서 현재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글에는 거의 하나도 허투루 쓰여진 문장이 없어서, 예를 들어 각 장(章)의 앞에 한두 문장씩
붙인 제사(題辭, epigraph)는 루이스의 박학다식을 만끽할 수 있는 잔재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아널드의 <소랩>을
통해 호머의 《일리아스》로 도달하게 되는 과정을 말하면서 ‘각 부분은 각기 다른 부분을 비춘다 ogni parte ad ogni parte
splende’(83쪽)라는 경구를 스스로 작품을 통해 실천하고 있는 예이기도 한데, 그 부분에 대한 역주가 대폭 날아가 버린 것은 여전히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다시 그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단지 귀를 열고 입은 닫고 있으면” 구구절절한 역주가 아니라 텍스트와 독자가 일대일로
만나는 조용한 독서행위의 한가운데에서 그 의미가 스스로 독자들에게 도달할 것임을 믿을 뿐이다.
이 책이 루이스의 회심을 다루는 자서전으로만 알려지고 있는 것도 번역자로서는 적이 안타깝다. 그의 자서전은
그 전체적 구도가 영문학사를 아우르는 대계(大系)이면서(낭만주의가 지배적인 경향이긴 하지만) 동시에 종교적 회심을 그리는 원형으로 모양지어진
탁월한 작품이다. 자신의 문학적 관심사와 믿음이라는 문제가 하나의 그릇 안에 잘 녹아 담겨 있는 것이다. 번역자로서 그러한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고 싶은 욕심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그것은 단지 문학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차이나 미묘한 표현의
문제까지 살려내야 하는 일이라 쉽지 않았다. 이 책이 전달하는 우교어락(寓敎於樂, 즐거움 속에 가르침이 있다)의 반분이라도 독자 여러분에게
전달되었으면 바랄 나위가 없겠다.
이 책에 푹 빠져 지내는 동안 루이스의 생각, 성향, 말투 같은 것들이 내게 배어 들어와 그를 추종하는 말
이상은 할 수 없게 되어 버렸으니 번역자로서는 좀 겸연쩍기도 하다. 함께 애써 주신 분들 얘기를 하고 끝내야겠다. 편집실에서는 “루이스 책 한
권 펴내려면 웬만한 책 서너 권 펴내는 수고가 든다”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그만큼 루이스 시리즈에 쏟는 애정이 만만찮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애를 먹이는 일들이 책 나올 때마다 생긴다니 묘하기는 하다. 이번에도 책 앞에 실은 사진들의 판권을 따느라 고생들을 많이 하셨다.
게다가 정상윤 선생은 루이스 시리즈의 《순전한 기독교》 때부터 책임편집을 하고 있으면서 견실한 책 모양으로 다듬는 발군의 실력을 보여 주고
있는데, 이번 책도 그이의 세심한 손길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였다. 편집실 여러분에게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