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복협 주최 청년부흥집회,
전병욱 목사의 두 번째 강좌 中 -
- 죽여버려야할 동성연애자? -
그는 은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예로 필립 얀씨가 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라는 책을 언급한다. 그 책은 대체로 좋지만, 중간에 동성애자들까지도 용납하는 것을 은혜라고 하고 있어서 동의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 다음에 이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동성연애자는 죽여버려야지 그걸 왜 놔둡니까?"
- 작은 교회 집회를 꺼리는 이유, 우리가 노처녀 옆에 가기 두려워하는 이유? -
그는 자신의 발언이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 소지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독자 여러분들이 우선 직접 판단해보시라.
"저는 이런 말씀을 드리면 상처 입는 사람들 있을지 모르지만 솔직한 이야기인데, 너무 작은 교회의 집회는 제가 잘 안 갑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적기 때문에 안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가서 설교를 하면 상처를 받아요. 약이 오르는가 봐요. 설교를 하다보면 우리 교회 부흥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데 그런 얘기를 해도 상처를 받아요. 우리 교인 몇 명이다 하면 상처를 받아요. 그런 얘기 왜 하냐 그러고, 내가 무슨 책을 읽었다 하면 그래 너 혼자 책 많이 읽었다 그러고, 그때 제가 느낀 것은 너무 은혜가 없는 사람하고 얘기를 하니까 상대가 안돼요. 맨날 상처예요, 맨날 상처. 반면에 소위 큰 교회 부흥하는 교회에 가면 제가 집회를 할 때 편안합니다. 그런 교회는 무슨 소리를 해도 다 받아줘요. 아유, 젊은 놈이 잘 놀고 있군, 그러니까 여유만만이예요. 그래서 제가 또 하나 깨달은 것이 뭐냐면? "아, 이래서 은혜가 필요하구나." 여러분, 우리가 왜 노처녀 옆에 가기를 두려워하죠? 은혜가 없기 때문에 옆에 가면 맞아 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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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조게시판
십자가 [2003-08-20]
저는 작은 교회의 청년부를 지도하고 있는 목사입니다. 본래 한 사람을 평가하고, 특히 비판한다는 것은 매우 심적인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래전부터 전병욱 목사에 대해 가졌던 생각을 여러분에게 꺼낼 시점이 된듯해서 이 글을 씁니다.
전병욱 목사는 이미 한종호 목사에 의해 많은 평가가 이루어졌지만, 저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들을 중심으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실명을 쓸까 했으나, 글의 파문이 커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덕을 세우기 위해 가명을 사용하니 양해바랍니다.
한가지, 제 글이 혹시 여러분이 제가 전병욱 목사에 대한 시기심이나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고 오해할까하는 두려움 생깁니다. 그러나 저는 최근에 수많은 청년들과 목회자들이 무비판적으로 전병욱식 선동과 신앙 운동에 함몰되어 가는 것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에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전병욱 목사는 정말 훌륭한 점이 많은 목사인 것은 분명합니다. 저도 그의 저서와 설교를 통해 본받을 것이 많다는 점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을 통해 여러분들이 전 목사의 좋은 점만 취하고, 너무나 위험한 요소들에 대해서는 분명한 비판적 시각을 갖고 그를 대하게 되길 빌 뿐입니다. 저로서는 청년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일종의 사명감으로 이 글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전병욱 목사는 이미 뉴스앤조이(newsnjoy.or.kr)에서 한종호 목사에게 난도질을 당한바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종호 목사가 전 목사를 본격적으로 비평하기 전부터 이미 그의 초기의 저작들(마른뼈도 살아날 수 있다, 식어진 가슴에 불을 붙여라)을 읽고 이미 그에 대해 스스로 긍정, 부정적 평가를 스스로 내린바 있습니다.
결론은 그의 신앙관과 목회관은 너무나 위험하고 자본주의적이며, 심지어 여러분은 놀랄지 모르나 인본주의적 경향까지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종호 목사의 글을 뉴스앤조이 사이트에서 단지 드문 드문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란 것은 저의 비판적 지적과 한종호 목사의 그것이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과거 전병욱 목사가 신반포 교회에 있을 적에 대단히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와 직접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저는 자주 신반포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고, 그 교회의 교역자들과 깊은 교분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에 대해 나름대로 올바른 평가를 내릴 수있다고 자평합니다.
우선 전병욱 목사는 여타의 목회에서 성공을 거둔 훌륭한 목사님들과는 사뭇 다른 방식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의 교회의 옥한흠 목사, 안산 동산 교회의 김인중 목사님 같은 경우, 철저히 바닥에서 시작해서 한 영혼 한 영혼을 훈련시켜 지금과 같은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전 목사의 경우는 철저한 의 성공입니다. 제가 이렇게 함부로 결론적 혹평을 내리는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그가 소위 뜬 것은 삼일 교회에 부임하자 마자 쓴 는 책 한권 때문이었습니다. 그 책은 일대 선풍을 일으켜 갑작스레 전병욱 목사를 기독교계의 주목할 인물로 떠오르게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처음부터 그 책이 정직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그 책의 표지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거친 표현을 사용하자면, 이것은 완전히 개뻥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신반포 교회의 대학부는 150명 정도의 숫자에서 부흥한 것은 사실이지만, 평균 출석이 500명이 아니라, 평균 250-300명이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예사제를 비롯한 여러 놀라운 부흥 전략의 결실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부흥은 많은 고등부 3학년의 졸업후의 편입과 대학부 졸업 대상자들의 많은 사람을 대학부 리더로 세우고 청년부로 승계하지 않음으로 인한 자연 증가의 측면도 아주 컸습니다.
아무튼 신반포 교회의 대학부가 부흥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300명 부흥과 500명 부흥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 150명의 대학부를 300명 수준으로 올린 경우는 주변에 많습니다. 그러나 500명의 경우는 조금 드뭅니다. 그런데 전병욱 목사는 자신이 그렇게 했다고 속인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속임수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고,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풀린 숫자는 철저히 상업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장사꾼들이 흔히 뻥튀기를 하듯이, 그렇게 숫자를 늘려, 그것도 엄청나게 늘려 자신의 능력을 과대 포장했다는 사실입니다. 상업적 용어를 빌자면, 명백한 공정거래 위반입니다.
화가난 일부 신반포 교회의 교역자들과 청년들이 공개, 비공개적으로 그 뻥튀기 된 숫자의 잘못을 지적했을 때, 전병욱 목사는 이렇게 답변했다고 합니다.
" 재적이 500명이란 것이지, 출석이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500명이라해도 틀린 것은 아니지 않느냐? 그 재적인원은 언제든지 교회에 나올 수 있는 숫자이니까."
과연 이것이 정당한 답변인지에 대해서는 여러분의 판단에 맡깁니다. 아무튼 문제는 이 부풀려진 숫자가 선전된 이 책으로 인해 전병욱 목사가 세상에 두각을 나타냈고, 바로 그 네임밸류(명성)으로 인해 그가 맡은 삼일 교회에 사람들이 몰려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건대, 이것은 분명히 철저한 숫자 부풀리기에 의한 상업주의의 승리입니다.
한편, 이런 방식으로 삼일 교회의 부흥이 가능케 된 것도 문제지만, 동시에 그것이 여러 교회에서 청년 그리스도인들이 빠져나간 수평 이동의 결과라면, 과연 한국 교회를 위해 그 부흥이 바람직한 부흥이었는지 역시 심각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후 전병욱 목사는 와 손을 잡고, 계속적으로 책을 내게 되는데, 이미 주목받은 책을 쓴 베스트 셀러 작가요, 사실 또한 책의 내용도 사실 도전적 내용이 많이 담겨져 있어서 을 낳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철저히 의 마케팅 전략의 성공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결국 이것은 어떤 측면에서 자본주의적 상업술의 승리입니다. 그렇게 해서 전병욱 목사의 삼일교회는 급속도로 가속이 붙으면서 엄청난 숫적인 부흥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지금은 얼마나 모이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나, 그는 삼일 교회가 2천명 정도로 부흥했을 때에도 출석 교인의 수를 3천명으로 선전하는 행태를 지속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점을 전병욱 목사의 첫번째 문제점으로 꼽는 것입니다. 즉, 그는 정직하지 못한 결과를 선전하여, 상업주의적 발상으로 교회를 부흥시킨 측면이 강하다는 사실입니다. 한마디로 Unfair하고, 게임의 룰을 지키지않은 성공입니다.
두번째는 전병욱 목사는 사람 중심;의 목회가 아닌, 일 중심의 목회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 역시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예수님의 복음의 정신과 완전히 상치하기 때문입니다. 전병욱 목사는 일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필요한 사람을 세우기 위해 있던 사람을 버립니다.
그 단적인 예는 이것입니다. 를 읽으면, 전도축제인 예사제의 성공 사례가 나옵니다. 그런데 예사제를 총지휘하던 당시 신반포 교회의 형제 하나가 게으름을 피면서 일을 잘못하자 즉시 잘라버리고, 새로운 인물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결국 예사제는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형제의 이름이 실명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말을 드리자면, 그 책이 나온 후에, 그 형제가 그 책을 읽고 정말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당시 전병욱 목사의 후임으로 지금은 아프라카 선교사로 나가 계신 안XX 목사가 후임자로 일했는데, 그 형제가 눈물을 흘리면서 그 목사님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안 목사님에게 직접 전해들은 말임을 밝힙니다.
"흑흑,목사님! 정말 세상에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저는 그 때 정말 제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전병욱 목사님에게는 맘에 안드셨나봅니다. 저는 게으름을 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를 많은 사람들이 다 읽는 책에 이름까지 거론하면서 이렇게 매도할 수 있습니까? "
바로 이것이 전병욱 목사의 목회 스타일입니다. 지금도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전 목사는 맘에 든 사람이 있으면 점찍어서 전폭적 지원을 해가며 키워주다가 자신의 양에 차지 않으면, 쓰는 말로 "버린다"고 합니다. 최근까지도 그렇게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해 주변에서 여러번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삼일 교회가 초기의 사람들이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계속 인적 물갈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려했습니다.
세번째는 전 목사가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쉽게 단죄를 가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모조리 쪼다요 병신으로 전락시키고 맙니다. 다른 사람도 자신처럼 빨리 목회를 해야하고, 그리고 목회를 하되 자신처럼 부흥을 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쪼다 병신이 됩니다. 그는 신대원을 졸업한 후에도 도서관에 남아 Th.M.에 진학해서 공부하고 있거나 유학을 준비한 사람들을 "학충이"라고 비판하며 다녔습니다. 참으로 그의 그런 행동은 어처구니 없는 황당한 짓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그의 비판은 스스로 이율배반적인 행위일 뿐입니다. 원래 전 목사는 신반포 교회에서 대학부를 부흥시킨 후, 청년들을 몰래 끌고 나가 개척을 하려는 야심을 가졌습니다. 실제로 그는 상가 건물을 교회로 임대 계약을 마치고, 청년들을 대거 포섭해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야비한 비밀스런 거사는 담임 목사이신 홍XX 목사님께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홍 목사님은 그런 비겁한 행위를 발견한 후, 전 목사를 불러다 이렇게 물었다합니다. 이것 역시 홍 목사님과 식사를 함께하면서 대화를 나눈 어떤 목사님의 입을 통해 직접 전해들은 것입니다. " 우리 교단에서 목사 생활 그만할렵니까, 아니면 개척을 포기할렵니까? " 이 때, 전 목사는 눈물을 처절히 흘리며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홍 목사님은 제가 볼 때, 참으로 신실하시고 경건한 목사님이십니다.
이후에 전 목사는 교회에서 사임을 당한 후. 자신이 책에서 밝혔듯이 진로를 놓고 기도하게 됩니다. 유학이냐, 다시 밑바닥 개척이냐? 그런 와중에 삼일 교회의 부름을 받고 가게 된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문제삼는 것은 공부하는 사람들을 학충이라고 사방을 돌아다니며 매도한 자신이 학충이 되려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개척한 후에는 다른 공부하는 사람이나 유학생을 학충으로 매도하고 다닙니다. 저도 그 학충에 분류되고 있는 사람이라 더 민감하더군요. 그런 논리라면, 석사와 박사과정을 지도하고, 좋은 제자를 유학을 보내는 교수님들은 선생 학충이 되는 셈이지요.
한마디로 기가 막히고 황당할 뿐입니다. 전병욱 목사의 달란트와 다른 사람의 달란트는 다른 법입니다. 공부에 부름받은 사람도 있고, 일찍부터 목회에 부름받은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가관인 것은 그런 비판을 가하는 전병욱 목사 자신이 한국의 유학간 신학생이 대거 포함된 미국 유학생 모임인 kosta에 자주 가서 설교를 한다는 사실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자신이 규정지은 학충들을 떼거리로 모아놓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훈계하니 이런 사람의 설교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요?
한번은 신대원에서 열린 예배에 대한 포럼이 있었습니다. 전 목사는 열린 예배를 모조리 인본주의 예배로 매도하고, 거친 말투로 그런 예배를 드리는 목사들을 열린 예배 따위를 하는 것들이라고 비하하며 비판했습니다. 자신의 예배 방식만이 옳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과 같은 설교 중심의 목회만이 옳다고 말하면서, 옥한흠 목사까지도 도매금으로 비판하기를 서슴치 않았습니다(지금은 철없던 시절에 함부로 옥 목사님을 비판했다는 자성을 한다는 말이 들리더군요).
이러한 면모는 그가 얼마나 협소한 사고를 가졌는지 충분히 엿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의 이런 시비조의 설교와 주장은 결국 그런 교육을 받는 청년들 역시 전투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전병욱 목사가 성추행 의혹이 있다는 글(어떤 자매가 구체적 정황을 들어가며 자신이 당한 일을 글로 올린 바 있었으나 전 목사가 강력히 부인하고, 그 자매 역시 파문이 너무 커지자 스스로 글을 지우고 침묵해 버림)이 뉴스앤조이 사이트에 실린 적이 있는데, 추정컨대 특정 교회 전사들이 사이버 테러를 가해 서버가 다운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런 행태는 전투적 성향이 강한 이단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그런데 특정 교회가 집단으로 저렇게 한 것입니다. 그 교회가 어떤 교회를 지칭하는지는 다들 짐작할 수 있으라 봅니다. 저는 이런 사태를 지켜보면서, 전병욱 목사가 말하는 세상을 정복하는 그리스도인이 저런 방식의 전투적인 모습만 이어야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했습니다. 도대체 사랑과 이해와 관용과 눈물은 어디로 가버리고 진리를 향해 돌격 앞으로!만 있단 말입니까?
또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직접 삼일교회 사이트에서 읽고 확인한 것이기도 한데요, 전 목사가 이성교제 지침이라고 게시판에 올려놓은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믿기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틀림없이 전 목사의 주장이었습니다.
" 5살 이상 차이나는 커플은 죄다 변태다. 변태로 보면 틀림없다! "
정말 어처구니없고,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를 않더군요. 그렇다면 사라와 10살 차이가 나는 아브라함은 왕변태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죽을 때까지 사랑하는 아내와 저는 14살 차이가 나니 변태 중의 괴수가 되고 마는군요. 그래서 누가 그 문제를 또 따졌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답변했다는군요.
" 그 지침은 우리 삼일교회 청년들에게 적용될 뿐이지, 모든 교회의 청년들이 그렇게 하라는 것은 아니다. "
한마디로 제멋대로입니다. 저는 한편으로 변태로 분류될 그 교회의 성도들이 우려되었습니다. 만일 그 교회에 결혼하신 부부나 교제를 하는 커플 중에 5살 이상 차이가 난 사람들은 분명 상처받았을 거란 이야기입니다. 참으로 얼마나 전 목사가 경솔한 말을 쉽게 내 던지는지 알 수 있고, 그의 규범적 잣대가 얼마나 독단적이고 안하무인격인지를 엿볼 수 있는 주장입니다.
네번째로 그는 성공병에 걸린 목회자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자신의 방식대로 부흥이 되지 않으면, 모두 실패자입니다. 역시 신대원에 있었던 어떤 목회 포럼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큰 교회 목사님들 뿐만 아니라, 시골에서 조용히 목회를 하시는 분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시골의 작은 목회를 하시는 분들도 나름대로 예수님 앞에서 부끄럽지는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전 목사는 부흥시키지 못한 목회자는 모두 실패자라고 단죄하면서 토론에 임했습니다. 참석하신 목사님들과 세미나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어처구니없어 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가 성공병에 걸렸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모두 실패자라는 이원법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그는 철저히 엘리트주의가 몸에 배어 있습니다. 성공한 엘리트가 되어야 하고, 엘리트가 아니면 키워주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이지 성경의 정신은 아닌 것입니다.
때로 그는 성공을 위해서 인본주의적 발상까지고 마다하지 않습니다. 단적인 예로, 그는 예사제를 비롯한 전도 축제를 할 때, 소위 얼굴 이쁜 쭉쭉빵빵한 미인형 자매들에게 안내를 맡깁니다. 그는 당당히 이렇게 주장합니다.
"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지만, 사람은 외모를 본다. 그러므로 초청되어 온 사람들 눈에 먼저 이쁜 여자들이 드는 법 아닌가? "
그의 상업주의와 인본주의적 경영학적 마인드를 충분히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외에도 그의 성공주의적 경향을 수도 없이 짚어볼 수 있지만, 지면상 생략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역사에 대한 몰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역사 의식이 크게 결여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자주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의 문제를 잘못 진단합니다. 최근에 그는 이렇게 설교했다고 합니다.
" 한국에는 정의로운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은혜받은 사람이 없어서 이 모양이다. "
참으로 이 주장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 여러분들은 잘 아셔야 합니다. 정말 한국 교회에 은혜받은 사람이 없어서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입니까? 웃기는 주장입니다. 저는 그 주장을 이렇게 바로 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 한국에는 은혜받은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은혜받은 정의로운 사람이 없어서 이 모양이다."
한국 교회에는 은혜받은 사람이 차고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받았단 사람들이 역사의식도 없고, 정의에 대한 의식도 없습니다. 정말 이것은 너무나 심각한 문제입니다. 단적인 예로, 옷로비 사건의 주역들은 모두 할렐루야 교회 집사, 권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매 주일 성경공부 모임을 갖고 항상 소위 은혜로 충만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권력의 차양막 속에서 국민들을 속이고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를 하면서 서로를 비난하는 작태를 보여준 것입니다.
전두환의 몸종 장세동 씨는 교도소에 있을 때, 교도관이 감동할 정도로 신앙에 엄격했습니다. 매일 성경을 묵상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수백명이 학살당한 광주 사태의 주범이었고, 자신의 책임인 수지김 사건에 대해 말하길, 그 가족에게는 미안하다. 그러나 공소시효가 지났기에, 책임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수지김의 가족이 도대체 얼마나 억울했을지 한번만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수지 김은 살해당한 후 빨갱이로 전락했고, 가족들은 하루 아침에 빨갱이 가족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후 가족들은 자살, 해고, 이혼, 정신적 고통 등으로 완전히 파산되고 말았습니다. 장세동씨가 진정으로 은혜받은 사람이라면, 그 가족들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해야 마땅합니다.
도대체 전 목사가 말하는 은혜란 것이 무엇입니까? 정의로운 사람들이 나라의 정의를 바로 잡고자 목숨바치고 있을 때, 소위 은혜받았다던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밤낮 부흥회나 하며 은혜로 충만해있었던 것이 아닙니까? 도대체 뭐가 은혜받은 사람이 없단 말입니까? 그러니 전병욱의 주장은 뒤집어서 바로 잡아야 합니다. 은혜받은 정의로운 사람이 없어서 교회와 나라가 이 꼴이다라고 말입니다.
전 목사의 역사 몰이해의 또 한가지 예로, 그는 용맹했던 미국의 인디언들이 보호구역에 갇힌 뒤에는 그 용맹성을 모두 잃어버렸다면서, 그리스도인들도 보호구역에 갇혀있으면 병신이 된다고 적용했습니다. 이에 대한 비평은 뉴스앤조이에서 한종호 목사의 을 통해 더 자세히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없을 뿐입니다. 인디언들이 그런 비극을 당한 이유는, 바로 총과 대포로 무장한 미국인들의 인디언 말살 정책때문이었습니다. 인디언들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은 무력으로 자신의 땅을 빼앗긴 것이지 용맹성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이외에도 전병욱 목사의 오류와 위험성에 대한 지적은 뉴스앤조이에서 한종호 목사의 글을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이상에서 저는 전병욱 목사의 문제점들들 몇 가지 짚어보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성공만 거두면, 잘못이 면죄되어버리는 이상한 풍토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공이 어떤 성공이냐는 별로 따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병욱 목사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서, 무조건 추종하는 위험을 피해야합니다. 도대체 그 성공의 실체가 무엇이고, 성경적으로 타당한 것인지, 곰곰히 따져보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전병욱 목사의 긍정적인 점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그가 젊은이들에게 신앙의 불을 지펴놓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언급했듯이, 그가 주는 도전, 그가 외치는 은혜가 도대체 어떤 실체를 가졌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기존 교회에서는 수많은 청년들이 그런 대교회로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국 교회 전체로 볼 때, 이런 것이 과연 바람직한 현상인지 곰곰히 생각해볼 시점입니다. 만일 어느 순간 만족하지 못하게 되면, 그런 벌떼 신자들은 다시 한없이 꿀을 찾아 헤매기만 할 것입니다. 그러니 각 교회에서 그런 벌떼 신자를 만들지 않도록 교역자들이 잘 먹이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정말 우려되는 것은 젊은이들이 전병욱 목사류의 책들에 너무나 미쳐있다는 사실입니다. 부흥!, 파워, 감동! 이런 선동적 문구들로 가득찬 책들이 서점에 널려있습니다. 그리고 인스턴트 식의 잡지 책 수준의 책들이 베스트 셀러에 버젓이 올라가 있습니다. 최근의 신학교의 신학생들의 독서 경향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작 젊음의 시절에 읽어야 할 소중한 책들, 어려운 책들, 두고 두고 읽음으로써 깊은 사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두꺼운 책들은 아무도 읽지 않고 있습니다.
영화 중에는 액션 영화도 있고, 감동을 주는 대작도 있습니다. 액션 영화를 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저도 그런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액션 영화를 두번 이상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감동적인 영화로 액션 영화를 꼽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대작은 다릅니다. 그런 영화는 깊은 사상과 감동을 전해줍니다. 몇번을 봐도 나의 전 삶에 영향을 줍니다.
저는 적어도 현재 가지는 전병욱식 목회가 이런 액션 영화 방식이 아닌지 자평해봅니다. 그의 책들도 분명 흥분과 도전을 던져줍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치 조폭 마누라나 두사부일체가 주는 흥분과 감동의 수준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말 그대로 그런 영화는 대박을 터트린 영화입니다. 흥행에 크게 성공한 영화입니다. 왜 저는 그런 영화에서 전병욱 목사를 연상하게 되는지요....
저는 이런 점에서 최근에 기독신문사에서 책을 내신 대학부의 홍명유 목사를 전병욱 목사보다 훨씬 더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이 분의 책에는 개뻥이 없고, 거짓이 없습니다. 읽으면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한 영혼, 한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행간에서 진실하게 느껴져, 정말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 분은 정말 더디가더라도 '사람 중심'의 목회를 하는 분이었습다. 물론 이 분도 자신의 책에서 전병욱 목사의 에서 큰 도전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전병욱 목사에게서 받은 도전과 그의 오류는 명백히 구분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만약에 홍병유 목사님도 전병욱 목사의 책이 과장된 측면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면, 실망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전병욱 목사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청년 사역자들과 청년들이 도전을 받았다는 사실을 긍정적 측면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에게 있어서는 지금껏 말씀드린대로, 전병욱 목사의 부정적인 측면들은 그러한 긍정적 측면들을 완전히 가리고 맙니다. 또한 제 글이 자칫 부흥 반대주의로 비쳐질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저도 부흥을 위해 오늘도 애쓴다는 사실로 답을 대신하겠습니다. 대신 참된 부흥을 위해 노력하려 합니다.
이런 비판적 글을 올린 저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현재 우리가 혹시 놓치고 있는 중요한 점들은 없는지 한번 재고해보자는 의미에서 이 글을 올렸습니다. 부디 전병욱 목사가 앞으로는 더디가더라도 마지막 한 사람까지 껴안고 가고, 사람을 중심으로 삼는 목회를 하게 되고, 과장이나 부풀리기를 하지 않고,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다고 사람을 쉽게 단죄하는 미성숙함에서 벗어나 한국 교회의 존경받는 목사의 한 사람이 되길 빌 뿐입니다.
- 삼일교회 게시판 -
Name 김진우 [ ] Subject 전병욱 목사님...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동대문에 있는 한 작은 회사에 다니는 20대 후반의 형제입니다.목사님을 넘 좋아하는 열성 팬으로 목사님 설교 말씀을 잘 듣고 많은 도전을 받으며 그렇게 살으려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몇년전에 목사님과 어느 자매들 채팅 내용을 인터넷을 통해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그 중의 나이차가 많이 나는 이성교제는 하나님 뜻이 아니라는 말씀이 요즘 자꾸 제 마음을 울립니다. 교회에서 한 자매를 만났는데 자매와 저의 나이 차는 7살 차이 입니다. 목사님 저의 맘속에 있는 부담감과 답답함을 어찌해야 할까요. 답변 부탁 드립니다.
Name 전병욱 목사 Subject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이성교제의 문제...
삼일교회는 많은 청년들이 모여있습니다. 그런데 남자들 취향이 너무 어린 자매들에게 가 있어서, 새로운 질서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늙은 남자가 어린 여자 너무 쉽게 접근하지 말라는 의미가 더 강했습니다. 삼일교회 안에서는 농담으로 여기는 이야기를 사정을 모르는 밖에서는 너무 심각하게 느끼는 듯하는군요. 능력만 되면, 어떤 여자를 만나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능력이 안되서 문제지요.
Name 김진우 [ ] Re: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이성교제의 문제...
목사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Name 김동진 [ ] Subject 궁금합니다.
이름 안썼다고 글이 삭제됐네요.......허탈하지만, 다시 한번 씁니다.
교회내에서 이성교제 을 어디까지, 어떻게 해야하나요?저의교회 목사님은 결혼을 앞두고(대략6개월정도) 교제는 자제되어야한다고 말씀하시던데, 이성교제가 신앙생활에 방해가 될수있기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Name 전병욱 목사 subject 섬기는 목사님께 물으세요.
왜 내게 묻죠?
작성자 박영현 제목 방안에만 박혀사는 폐쇄적인 사람을....
일본에서 저런 사람들을 "오타쿠"라고 부른답니다. 사전적 의미는 "집" 이란 뜻이고 실제적인 의미는 뭔가에 심한 집착, 매니아를 뛰어넘어서 지나치게 열중하고 광적으로 믿는 사람들 뜻한다고 하네요. <하나님 나라의 잔치는 자격이 필요없다>...라는 새벽설교를
듣다가 목사님이 용어를 까먹었다고 해서 알려드려요~한때 저도 오타쿠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알게 되었네요. *^^*
도움되시길~~~ 안녕히계세요
작성자 전병욱목사 제목 옛날 설교를 듣는군요.
기억도 못하겟는데.
Name 정귀연 [ ] Subject 전병욱리더쉽의 강점 분석
전병욱 외모와 말투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사실 경영인이 더 잘어울린다.(물론 본인은 개성이라 하였지만) 전병욱 목사의 냉철한 사고와 이성적행동들을 보더라도 우리는 쉽게 알수있다. 그가 움직임으로 변화를 일으킨다. 주가 그를 통해 은혜를 주시고, 교회가 성장과 영향력(주도권)이 넘쳐나고 있다. 그에게는 그만의 독특한 리더쉽이 있다.
1. 아픔을 아는 리더 : 그는 거절의 아픔을 승화시킨 리더이다. 그가 과거 교회에서 더큰 지도자에게 거절당함의 쓰라림을 간증한것을 들었다. 진정 차범근만이 이해 할것이다. 모든것을 내던진 조직속에 상처를...유년시절 또한 외모와 여러 거절의 아픔을 겪었다. 주는 그 아픔을 승화시켰다. 그로인해 전병욱은 아픔을 승화시키는 영적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어떻게? 조금은 단순하지만 대단히 파워넘치는 "주도적인생"을 외치며 새바람을 일으켰다.
2. 대가를 소중히 외치는 리더 : 그는 꿈만큼 대가또한 균형있게 외쳤다. 아니 너무 비젼에만 치우친 세상에게 대가의 인사이트하여 기독교의 묘한 공짜심리의 미묘한 죄성을 깨부셨다. 냉철함과 행동주의가 아니고서야 정말로 어려운 설교일것이다. 그러나 주는 사용하셨다.
3. 기본중심의 본질적 리더쉽 : 그의 설교는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있다. 뉴스와 그가 매일겪은 문화와 책들은 전부 전병욱의 설교재료다. 하지만 그것으로 평가할수없다. 왜냐하면 전병욱의 키포인트는 언제나 말씀과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는 꽹과리를 무척 두려워하고 경계하는것 같다. 이는 진정 말씀의 진리를 사모하는 지혜에서 나온것이다.
목사님 건강하십시요
Name 전병욱 목사 [ ] subject 다른 사람 분석하시죠.
대부분 내 설교 내용이잖아.
안녕하세요? 목사님!
여기는 목사님께서 12월에 집회를 인도해주실 지역의 연합모임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목사님께서 지난 번에 10월 23일 날짜로 올려 주셨던 samilpr.jpg파일을 보았습니다. 이번에 있을 집회의 홍보 포스터를 만드는데 목사님께서 올려주셨던 삼일교회 홍보 포스터를 사용하려고 하는 데요. 물론 들어가는 내용은 바뀌지만요^^ 저희가 수정하려면 원본 파일이 필요합니다. 이 포스터를 제작하신 분이 원본 파일을 갖고 계실 것이란 생각에 글을 올립니다. 부탁드려요 포스터 원본파일을 메일로 보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용량이 너무 커서 압축했는데도 보내 주실 수 없다면 직접 받으러 라도 가겠으니 꼭 부탁드립니다. 그것도 어려우시다면 그분 연락처라도 알려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하십시오^^
전병욱 목사
그걸 왜 나에게 묻죠?
Name 김현주 [ ]
Subject 3년간 leukaemia에 걸려
투병하던 5살난 아이가 엊그제 하나님 아버지께 갔습니다.
어제 viewing service를 저희 교회에서 해서 갔었는데요...
나이드신분들의 viewing과는 다른 느낌 이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사람들을 보내신 목적이 이루어지면 하늘나라 가는데, 그아이의 하나님뜻은 무엇이였을까...
하고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뜻을 이루라고 주신 나의 시간을 waste하는것은 아닌지...많은 눈물과 많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천재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마 11:25-26)
Name 전병욱 목사 [ ] subject 인생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위로받으십시오.
요즘 들어서 전병욱목사에 대한 관심을 갖을 수밖에 없게 된 청년입니다. 대학2년때(97년)는 열렬하게 맹종했던 이력이 있긴하나 지금은 안티 전병욱에서 이 사이트를 찾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유는 대학 다닐때 선교단체와 작은 개척교회를 섬기며 신앙생활에 방황하고 있을때,전병욱 목사의 책들을 보고서 엄청나게 영향 받고 도전받았지요.
문제는, 그의 한국교회와 선교단체를 모조리 싸잡아서 비판하는 독설에 그대로 빠져들어 버렸다는거죠.(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알겠더군요)그래서 결국은 모든 기독교단체와의 파탄이 생겨버렸고,혼자서 외롭게 참된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 고통의 터널을 걸어야 했지요.그의 책들과 설교를 보십시오! 이 얼마나 이론적이고 이치에 맞으며 열광하지 않을 수 있는지....청년의 피를 끓지 않게 할 수 있는지.....아~ 어리석게도 그 사실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지방에서 서울로 편입하고 신앙에 힘들어 하던 친구에게 그때당시(99년)에 당연히 전목사의 삼일교회를 추천하였고, 이친구는 환경적인 이유때문에라도 삼일교회에서 살다시피하고,신앙생활의 기본적인모든것들(주일성수,새벽기도,헌금...)을 행하였을뿐 아니라 삼일교회와 목사를 얼마나 사랑하고 믿었는지 모릅니다.그런데 열매가 없더군요..........이토록 눈물나게 지극 정성인데.......
우리의 하나님아버지께서 그렇게도 무자비하신 분인가요?! 성경에서 열매는 참으로 중요한 것이지요. 사람이 어찌 감히 남을 판단 할 수 있겠읍니까? 어떻게 쉽게 거짓 선지자를 분별 할 수 있으리요...만, 오직 겉으로 드러나는 열매를 보고서 조심스렇게 판단하는 것이지요...무화과나무에 무화과열매가 열리고 돌배나무에 돌배열매가 열리는게 진리이듯 드러나는 것으로 얼마든지 추측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직접 알아보기로 했습니다.삼일교회의 실상에 대해서.... 수시로 삼일교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글도 올려보았지요.전목사 비위를 거슬리게 했던지 제 글이 삭제되더군요.이후에 몇 번 더 관찰해보니 맘에 안드는 글들이 올라오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더군요.크~~~내가 속았다!.....이제서야 진실을 알겠더군요.오직 자신의 야망과 명예를 위해서 하나님마저 속이고 발버둥치는 불쌍하고 가련한 인간을...참으로 두렵고 치가 떨리더군요.이런 사람을 주의종으로 착각하고서 내인생의 얼마나 많은것들을 잃었고,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던지를... 그리고 책임지지 못 할 얼마나 많은 말들을 했던가...참으로 두렵습니다!
더군다나 내 친구의 인생은...열매없는 그곳에서 벌써 2년반이란 시간을 소비해 버렷는데...그 책임을 누가 진단 말인가?!
이 친구의 말에 의하면 청년 대부분이 저처럼 전목사에 열광하다가 삼일교회로 오는 경우가 많다 합니다.그런데 그 목사의 독설에 못 버티고 상처 받아서 떠나는 사람만해도 천명에 가깝다 합니다.사실이 이런데도 전목사가 잔챙이입니까?
정말 무서운 강도가 누구입니까? 척 보고도 알 수 있는 인상 험악하고 무서운 조폭같은 사람이 아니라(그런 사람도 무섭지만 예방책은 쓸 수있쟎아요),참으로 지능적이고 교활한 천사같은 사람이지 않습니까?(못생긴 전목사를 보면 전혀 교활할 것 같지 않고,오히려 인간적일것 같은데...두번 속는군요) 정말 무서운 괴물과도같은 사람입니다.
그교회에는 일류대출신,엘리트들이 많다고 합니다.
전목사의 설교 스타일을 보면 당연한 결과겠지요.
돈 많은 커다란 대형교회의 목사가 무섭겠습니까?
이 나라 방방곳곳의 피끓는 젊은이들의 사고(생각)를 마비시키는 이사람은 누구라 칭해야 할까요?
진실로 깨어있는 한국의 주의종들에게 기도 부탁합니다. 한국의 미래와 장래를 위해서.......
사실 이렇게 전목사의 실체를 얘기했지만,두렵습니다.전목사의 파워가 만만치 않음을 느끼고 있으니까요.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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