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Piper

존 파이퍼 - 그리스도인의 독서

ToBeIsToChange 2006. 4. 17. 11:50

 

 

어려운 책을 읽거나 복잡한 생각을 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즐겁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는 이것들이 즐거움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적어도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기독교 역사의 대작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글을 전혀 읽을 수 없는 그리스도인들도 수없이 많으며, 이들의 경우에 모든 묵상은 들은 말씀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으며, 이들에게 몇시간씩 책을 읽는 것은 사치일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책이라고는 구경도 할 수 없고 성경도 겨우 몇 부분밖에 구경할 수 없는 곳에서 정말 가난하게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내말을, 기쁨을 위해 성공적으로 싸우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대작을 읽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말길 바란다. 그러나 이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가벼운 경건 서적은 기쁨을 낳는 반면 교리를 다루는 무거운 책은 기쁨을 죽인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진지한 독서와 그에 동반되는 사고(때로는 연구라 불린다)가 주는 기쁨이, 교회에서 찬양을 하거나 석양을 바라보거나 친구와 대화하거나 예화가 많은 설교를 듣는 기쁨만큼 즉각적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쁨의 크기는 더 클것이다. 갈퀴질이 곡괭이질 보다 쉽지만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낙엽뿐이다. 곡괭이질을 한다면 다이아몬드를 얻게 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다고 불평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수동적이다.이들은 자신들에게 영적인 일이 저절로 일어나길 기대한다. 이들은 잠언2:1-6이 표현하는 성경의 방식을 알지 못한다.

 

이 본문의 공격적인 단어들을 보라받으며... 간직하며... 귀를 기울이며...마음을 두며... 불러 구하며... 소리를 높이며... 구하며...찾으며....“ 만일 당신이 이렇게 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당신의 것이 될것이다.

 

당신이 이런일이 일어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지식을 주는 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당신이 이런일이 일어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하고 찾는 자들에게 복을 주려 하시기 때문이다.

 

내 말하는 것을 생각하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고 말한다. 당신은 생각하라. 하나님이 주신다. 어려운 생각을 하면 가슴이 냉랭해진다고 생각하게 된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가장 위대한 기독교 지성들의 경험은 그렇지 않았다. 기쁨과 연구가 함께했다. “여호와의 행사가 크시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가 다 연구하는 도다지혜로운 영국 청교도 토마스 굿윈은 이러한 성경의 방식을 보았다.

 

오늘날 미국의 거의 모든 출판물과 교회생활을 보면, 뼛속에 불을 일으키는 것은 교리나 생각이 아니라 요약본과 감동적인 이야기와 가벼운 경건서적과 음악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의 경험은 많은 유명한 성도들과 함께 다르다. “ 나로 말하자면 교리적인 책이 경건서적보다 신앙에 더 유익할 때가 많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앉거나 무릎을 끓고 경건서적을 읽으면서도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연필을 손에 쥐고 어려운 신학을 연구할 때 마음에서 노래가 저절로 나오는 것을 보게 되리라 믿는다.“

 

물론 아주 나쁜 경건서적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나쁜 신학서적도 있다. 둘 모두 순식간에 당신의 기쁨을 메마르게 할 것이다.

 

 기독교 교리의 달콤하고 영양만점의 과일 가운데 대부분의 것은 옛것이다. 어거스틴, 존 칼빈, 마틴루터, 청교도들, 조나단 에드워즈, 찰스하지..... 오래된 책들을 읽어라. 오래된 대작들이 너무 어려워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실수다.

 

최근에 나온 교리적인 책일수록 안타깝게도 학문과 그리스도를 향한 뚜렷한 열정을 더 심하게 분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반드시 다루어야 할 중요한 주제를 다루는 데 무관심하다. 너무 슬픈 일이다.

 

웨인 그루뎀의 <조직신학>” 은 행복한 예외이며, 보통의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을 통해 조금은 어려운 신학을 연구하다 보면 마음에서노래가 저절로 나오는것을 보게 될 것이다.

 

다른 책들도 있다. 청교도들의 책 가운데 고른다면, 특별히 주의 깊게 선택하지 않아도 될것이다. 오래된 저작들을 읽는 것은 하나님을 매우 잘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성과 감성을 통해 성경을 읽는 것과 같다.

 

존 칼빈의기독교강요처럼 여러 권짜리 책이라고 주눅들지 말라. 확실한 것은 대작을 끝내는 것보다 그 책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작을 섭렵하는 것은 생각만큼 그렇게 어렵지 않다. 당신이 나처럼 천천히-말하는 것과 같은 속도로- 분당 200단어를 읽는다고 생각해 보라 하루에 15분씩 읽으면(예를 들어 저녁식사 직전이나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1년이면 5,475분을 읽게 된다.

 

여기에 분당 200단어을 읽는다고 치면 1년이면 1,095,000단어를 읽게 된다. 평균적으로 책 한 페이지는 360단어 정도 된다 그렇다면 1년에 3,041페이지를 읽게 된다. 상당한 분량의 책을 10권이나 읽는 셈이다. 하루에 겨우 15분씩 읽은 결과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내가 갖고 있는 칼빈의 두 권짜리 기독교강요는 1,521페이지이며, 각 페이지는 평균 400단어로 되어 있고 모두 합치면 608,400단어다.

 

이것은 매주 하루를 쉬더라도 하루에 15분씩 읽으면 9개월이 못되어(33) 하나님에 대한 이처럼 놀라운 성경적 통찰을 다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요점은 이것이다. 성경으로 가득한 대작들을 진지하게 읽는데 투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길이 당신 속에 더 깊이 거하게 될 것이다.

 

 

물론 꼭 칼빈을 읽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위대한 고전을 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읽지 않는 것은 역사적 오만이라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By John Pi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