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선하다면 자신이 만든 피조물들에게 완벽한 행복을 주고 싶어할 것이며, 하나님이 전능하다면 그 소원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피조물들은 행복하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선하지 않은 존재이거나 능력이 없는 존재, 또는 선하지도 않고 능력도 없는 존재일 것이다." 이것은 고통의 문제를 가장 단순하게 표현한 말입니다. 여기에 대답할 수 있으려면 '선하다', '전능하다', '행복하다'는 말에 여러가지 뜻이 있다는 사실부터 밝혀 내야 합니다. 널리 알려진 뜻이 곧 가장 좋은 뜻이거나 유일한 뜻이라면, 이 논증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장에서는 '전능'의 개념에 대해, 그리고 다음 장에서는 '선함'의 개념에 대해 몇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전능(Omnipotence)이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논쟁하다 보면 "하나님이 존재하며 그가 선한 분이라면 왜 이러저러한 일들을 하시지 않느냐"는 말을 흔히 듣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식의 일들은 하나님이 하실 수 없다고 말하면, 즉시 "하나님은 못하시는 일이 없는 줄 알았는데"라는 응수가 돌아오지요. 여기에서 '불가능성'의 문제가 대두됩니다.
일상적으로 불가능하다(impossible)'라는 말에는 대개 '...하지 않는다면(unless)이라는 구절이 숨어 있습니다. 지금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이 방에서는 바깥에 있는 거리를 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즉 제가 시야를 가리는 저 건물 너머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이 집 맨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는다면 거기를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만약 제 다리가 부러졌다면 "하지만 위층으로 올라가는 건 불가능한걸"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누군가 나를 안고 올라가 줄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이라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자, 이제 "어쨌든 내가 지금 이 자리에 그대로 있고 시야를 가로막는 건물들도 그대로 있는 한, 바깥 거리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말에 나타나는 바, 불가능성의 또다른 차원으로 나아가 봅시다. 어떤 사람은 여기에 "공간이나 시야의 본질이 지금과 달라지지 않는다면"이라는 말을 덧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류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뭐라고 이야기할는지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이 말에 대해 "공간과 시야의 본질이 당신이 말하는 식으로 달라지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군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가능한지라는 것은 분명히 우리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상대적인 가능성 및 불가능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어느 정도 절대적인 가능성이나 불가능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새로운 의미에서 볼 때 '지금 이 자리에 앉은 채 시야를 가리는 저 건물을 우회하여 그 앞에 있는 거리를 본다는 것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에 대해 저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 말에 자기 모순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 말에 자기 모순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거리를 보는 것은 절대 불가능할 것입니다. 절대적 불가능성은 외부의 다른 불가능한 것들-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안에 원인이 있다는 점에서 내재적 불가능성이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하지 않는다면'이라는 구절이 첨부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어떤 조건, 어떤 세계, 어떤 행위자에게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행위자' 안에는 하나님도 포함됩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것은 내재적으로 가능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지, 내재적으로 불가능한 일도 하실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지 말이 안되는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령 "하나님은 피조물에게 자유의지를 줄 수 있는 분인 동시에 주지 않을 수도 있는 분이다"(God can give a creature free-will and at the same time withhold free-will from it)는 말은 하나님에 관해 어떤 내용도 전달해 주지 못합니다. 단어들을 무의미하게 조합해 놓고 그 앞에 'God can'이라는 말을 붙인다고 해서 없던 의미가 갑자기 생겨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것'(things)이 아니라 '헛것'(nonentities)입니다. 상호 모순되는 일은 하나님이 만드신 가장 약한 피조물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도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장애물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기에 말도 안되는 일은 하나님께도 똑같이 말도 안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성적인 사람들도 잘못된 데이터나 부주의한 논증으로 인해 종종 실수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일로 생각할 수도 있고, 가능한 일을 불가능한 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으로도 할 수 없는, 내재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규정할 때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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