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삶

전기영과 요시다 히데히코

ToBeIsToChange 2006. 4. 15. 03:08

1

 

87년 일본 유도에 기대주가 등장했다.

87년 8월에

전국 고등학교 종합체육 대회 유도 경기에서 경중 량급 우승.

석달 후인, 11월에

전일본 주니어 유도 체중별 선수권대회 78kg급을 우승.

이듬해,

전일본 주니어 유도 선수권에서 78kg급을 2연패하며 우승.

이 새로운 스타에 일본 유도계는 들썩였는데 그가 바로 다름아닌 약관의 요시다였다.

1969년, 아이치현에서 태어난 소년장사 요시다는
이듬해 허벅다리후리기를 장기로 삼아

고등학교 무대, 전일본 학생 유도 선수권에서 3연패하면서 그의 시대가 왔음을 알렸다.
일본 무대에 그의 등장을 신고하자마자 1988,1990년에는
세계학생 유도 선수권에서도 2연패하며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아가게 된다.
그리고 1년 후, 성인무대인 가노 지고로우배, 강도관배 등에서 우승하며 유도 천재 요시다는 78kg의 일인자로 군림한다.

그리고 드디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올림픽, 78kg 결승에서
미국의 모리스를 맞아 시종일관 경기를 압도해 나갔다.
그리고 발군의 허벅다리가 빛을 발하는 순간,
모리스는 한판 메치기를 당하고 요시다에게 금메달의 영광이 돌아가게 된다.
요시다 히데히코는 올림픽까지 석권하며 78kg급의 정상으로 우뚝서게 되었다.
23살의 나이에 세계를 제패한 그는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없어보였다.
그의 독주 체제는 이미 시작된 듯 했다.


그러나 정상을 유지는 쉽지 않았다.
이미 한국에서 요시다의 독주를 제재할 또다른 유도 천재가 성장하고 있었으니...
(무슨 무협소설 같네요.ㅋ)
그는 미래 한국 유도의 역사를 찬란하게 장식할....

바로 전기영이었다!

1973년 충북 청주시에서 태어난 그는

육상(던지기)을 시작하며 운동을 인연을 맺었으나,

아버지와 선생님의 권유로 유도에 몸을 담았고,
13살때부터 서서히 각종 대회에서 입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인 1992년에 꿈에도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면서 세계 정상의 목표를 향한 교두보를 마련한다.

일제 시대 때 모래판을 휩쓸던 할아버지와 유도를 배운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을까?
탁월한 힘을 바탕으로 업어치기와 허벅다리 후리기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더군다나 유도 선수로는 드문 왼손잡이의 이점을 잘 활용하여 승승장구!
93년 파리 오픈에서 우승하며 세계를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딛혔다.

이 두 천재가 처음으로 만난 것은 1993년 세계 유도 선수권 78kg급 결승전!
이미 챔피언 자리에 올라있던 일본의 요시다 히데히코와
세계 정상을 꿈꾸는 한국의 전기영.
두 유도 천재는 1위 자리를 놓고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을 펼치게 된다.

스포츠에도 그것을 담당하는 신이 있다면, 아마도 그 신은 장난꾸러기가 아닐까?


경기 종료후 3명의 심판은 전기영의 승리에 깃발을 올렸다.
두 쌍웅이 맞붙은 1993년 세계유도선수권 결승에서 한국의 전기영이 요시다를 물리침으로써 78kg급의 왕자로 떠오르게 된다.
전기영은 요시다라는 전 챔피언을 물리치고 기쁨에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왕좌를 내준 요시다 히데히코는 유도 종주국의 에이스로서 참담한 심정을 맛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순간이 기점이 되어 한국 유도는 일본 유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전기영을 앞세운 한국 유도는 프랑스를 주축으로 한 유럽 유도와 함께 종주국 일본의 아성에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 태권도도 앞으로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일본 유도는 돌파구가 필요했고 그 선봉에 요시다가 있었다.

요시다는 전기영과의 패배를 뒤로 하고 한체급 올려 86kg으로 출전한다.
94년 가노 지고로우배, 강도관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모두 우승하면서 역시 그도 유도에 있어서는 100년에 나올까말까한 기재였음을 증명해나갔다.
두 체급 석권과 일본 유도의 자존심 회복을 목표로 요시다는 95년에 있을 세계선수권에 대한 준비를 착실히 해나갔다.
그를 위협할 선수는 없어보였고 무난히 우승권에 진입하리라 예견됐다.

그러나....
또다른 유도의 천재 역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기영 역시 요시다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78kg에서 만족하지 않고 86kg으로 체급을 상향 조정하면서
유도계는 또다시 들썩이기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의 두 간판스타가 다시 한번 맞붙게 될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요시다는 이번에야말로 전기영을 누르고 일본 유도의
중흥을 이루겠노라고 결심했다.
이에 질세라, 한국의 전기영 역시 두 체급 석권을 위해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

그리고 유도팬들이 바라던 순간이 연출되었다.
1995년 일본 지바에서
신은 이 둘을 다시 세계선수권 86kg 결승에서 만나게 한다.

2년만에 해후...
그러나 결코 반갑지 않은 이 두 라이벌은 또 다시 승자를 가려야하는 승부의 세계에 몸을 맡길 수 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맞붙은 마지막 두 라이벌의 대결에서
또 다시 전기영의 승리로 돌아간다.
전기영의 바깥다리 후리기가 들어갔을 때, 심판은 전원 손을 높이 들고 한판을 선언했다.
이로써 두 사나이의 2차전 역시 전기영의 승리로 돌아가고...
요시다는 2인자라는 낙인이 찍이게 되었다.


전기영의 기세를 누가 막을까?
세계 선수권에서 요시다를 두번이나 누르고 두 체급 석권을 이룩한 전기영은

96년 애틀란타 올림픽까지 휩쓸면서 명실공히 최고의 선수로서 입지를 굳혔다.
한국에서는 체육훈장 거상장까지 수여받으므로써 유도인으로서는 최고의 영예를 누리게 된다.

반면에 요시다는 일본 내에서의 넘버 원일뿐..
올림픽에서는 메달권에 진입하지도 못하면서 그의 이름은 점점 잊혀져갔다.
두 선수의 희비가 교차되는 시기라고 생각할 수 있으리라.

1997년 10월 11일 새벽 프랑스 파리 시내의 옴니스포츠궁.
전세계 내노라하는 유도 강자들이 총 집결한 97세계유도 선수권대회 남자 86kg 결승에서

전기영은 다시 세계 제패를 노린다.
상대는 독일의 마르크 슈피트카...
상대를 잡았다하면 업어치는 전기영의 명성을 너무나 잘 아는 상대는 이미 주눅이 들어있었다.
결승전까지 계속해서 업어치기 한판승을 이끌며 올라온 전기영은 파죽지세로 밀어붙혔다.
전의를 상실한 채 위장 공격을 일삼는 상대에게 2차례 경고가 주어지고
5분의 경기가 끝나자 심판은 전기영의 우세승을 선언했다.

한국 유도 사상 첫 세계선수권 3연패를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1999년 유도계는 변화를 꾀한다.
이제까지의 체급을 조정한 것.
전기영과 요시다가 속한 86kg급은 90kg으로 상향 조정되었다.
이 둘에게는 신선한 자극이 아닐 수 없었다.
새로운 목표가 생긴 두 선수는 다시 훈련에 박차를 가한다.
여전히 우승 후보는 전기영...
그러나 너무나 자만할 탓일까?

아니면 그도 이제는 쉴 때가 온 것일까?
아시안 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5위에 그치며 대표 발탁에 실패한다.

요시다..
전기영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던 그가..
유도 선수로서는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날개짓을 준비하고 있었다.
99년 세계 선수권 90kg 일본 대표 선발전에서 우승하여 세계무대로 나섰다.

그의 노력에 하늘이 감명하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전기영의 그늘에 있던 서러움을 폭발시킨 것일까?
보란듯이 99년 세계 선수권 90kg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그 동안의 2인자의 서러움을 달래게 된다.
(요시다가 일본에서 훌륭한 유도인으로 칭송받는 이유도 이러한 투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004년, 흐른 세월만큼이나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요시다는 100kg급까지 도전하여 일본 챔피언을 차지하고 이종 격투계로 진출한 반면...
전기영은 일찌감치 대학원 과정을 밟고 마사회 코치를 역임한 후 지금은 국가대표 코치로 활약하고 있다.

2003년 가을, 전기영에게 일본 격투계의 대부인 이노키의 러브콜이 있었다.  
현재 프라이드에서 좋은 활약을 하고 잇는 요시다와의 대결을 성사시키려는 이노키측의 시도였다.

그러나 전기영은 말했다.

"요시다와 붙으면 지금도 충분히 이길 자신은 있지만 순수한 유도인으로 남고 싶다.
앞으로 체육과 교수로 대학 강단에 설 계획이어서 이종격투기로 외도하고 싶지 않다.
혹시 거액 대전료 제의에 마음이 흔들릴까봐 아예 만나자는 것도 싫다"
라고...

한국과 일본의 이종격투 팬들에게는 안타까운, 당찬 결심이 아닐 수 없다.
이노끼는 전기영의 거부 의사에 매우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
언제든 맘이 바뀌면 다시 연락하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이노끼의 이러한 태도는 그만큼 흥행성이 높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왕년의 유도 라이벌...
그것도 열세를 면치 못햇던 요시다의 리벤지를 바라는 일본 팬들의 기대는 흥행의 밑천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라이벌은 엄연히 다른 시각으로 유도를 바라보고 있다.
선수 시절엔 숙적의 라이벌로, 은퇴후에는 각자 다른 길로 걸어가면서
유도의 참뜻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건 둘 다 뛰어난 유도인이며 훌륭한 스포츠인이라는 것이다.
유도를 사랑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두 라이벌의 ...
대결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일지 모른다.

이 둘의 앞으로의 활약을 지켜보면서 장외 라이벌전을 감상하는 것도 격투기 팬으로서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의 이 두 유도인의 활약을 기대하며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