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교회 전병욱 목사 인터뷰 |
\"설교의 균형 상실이라기보다는 만남의 균형
상실\" |
전병욱 목사와의 인터뷰가 11월 4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5시 45분까지 1시간 45분간 진행됐다.
장소는 삼일교회 담임목사실. 이날 인터뷰는 3일 저녁 전병욱 목사가 '만나자'고 전화로 요청했고 기자가 이에 응함으로써 이뤄졌다.
정각 4시부터 약 10분간 사적인 얘기들이 오고 갔다. 기자는 정식 인터뷰로 하자고 요청했고, 전병욱 목사는 이걸로 해서 자신에
대한 얘기를 마무리짓자고 했다. 기자는 인터뷰에 대한 논평은 해야 하되, 가급적 전병욱 목사의 요청대로 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번에 게재되는 내용은 인터뷰 전문이 아니다. 인터뷰 전문은 녹취하는 중이다. 인터뷰 내용 중 핵심적인 부분만 편집해
게재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최근 이 문제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뜨겁고, 일부 네티즌들은 <뉴스앤조이>의 취지를 고의적으로
왜곡하거나 음해하는 주장들을 펴고 있다. 지금의 분위기로 볼 때 "인터뷰 내용을 왜곡 변조했다"는 주장을 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인터뷰 전문을
음성파일로 올리는 것을 고려했으나, 성가연습 소리가 커서 1시간 30분 이상 걸리는 음성파일을 듣는 것이 매우 불편할 것 같다.
또 한 가지는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 대한 전 목사의 입장이다. 전 목사는 "해명도 언급도 아예 안하겠다"고 했다. 질문에서도 아예
빼달라고 당부했다. "어떤 얘기를 해봐야 목회자에게 손해"라는 것이다. 구체적인 질문을 재차 던졌으나 "언급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반복했다.
"아예 질문에서도 빼달라"는 요청이나 "언급을 안하겠다"는 얘기를 여기서 밝힐 수밖에 없는 것은, <뉴스앤조이>와 전병욱 목사 모두
이미 공적으로 책임져야 할 상황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전 목사 개인의 명예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양쪽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미 공론화된 상태다. 또 처음 문제를 제기한 김혜정씨의 경우, 전 목사의 답변을 듣고 다음 행동에 들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
<뉴스앤조이>가 어떤 모양으로든 답변을 해주어야 할 입장에 처했다는 판단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런 반응을 보일 지
모르겠다. "<뉴스앤조이>가 김혜정씨의 다음 행동을 조장한다"고. <뉴스앤조이>는 그들의 억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방침이다. 수 차례에 걸쳐 자제를 당부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게시판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본질을 왜곡시키는 책임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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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과 답변을
요약한다.
목회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가. 메시지에서 무얼 가장
강조하는가?
성공했다고 생각한 적 한 번도 없다. 성공 자체는 없다고 생각한다. 과정에
충실하는 것이 중요하다. … 학생은 공부하는 것, 기업인은 기업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 아닌가. 메시지에서 하나님의 선택,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성령의 인치심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구속 곧 죄사함에만 머물러선 안되고 구속받은 백성들이 현장으로 나가야
온전한 구속이다. 법관이 되고 의사가 되어서 그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사회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을 출세주의로 보는 것은 오해다.
목회에서 가장 부족한 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인격적인 부족함이다. 자기 자신을 검증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차츰 나아진다는 얘기를 듣는다. 인격적으로
부족하지만 목사와 교인이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목회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목회라고 했지만, 동료 목회자들이 청년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는가?
그런 얘기 할 수도 있겠다. 고쳐야 할 부분이다.
<뉴스앤조이>가 하고 있는 일련의 비평작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비평작업에 대해서 반대는 안 한다. 내가 하나님인가, 비평을 받을 건 받아야지. 틀린 게 있을 수 있을 테고, 틀리면
고치는 게 개혁주의 아닌가. 틀린 부분이 뭐가 될 지 모르겠지만 틀린 부분에 대해서 납득이 되면 고쳐야 하지 않겠나.
<뉴스앤조이>의 어떤 대목에서 '내가 틀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은 했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덜 하지
않았는가. 최근 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았다. 한미준(한국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도 그런 거 아닌가. 그런
분들과의 접촉이 내 삶에 영향을 준 것 같다. 좋은 분들이니까. 이 세상에는 분명히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는데. 약간의 균형을 깨뜨린 게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에는 험한 데에서 사역하는 분들을 찾아다닌다. 그런 분들과 한 두 시간 얘기하니까 설교가 바뀐다. 내 문제는 설교에 균형을 잃은
게 아니라 만남에 균형을 잃은 거 같다. 그런 부분에 대한 자극을 받았다. 그런 점에서 <뉴스앤조이>를 통해서 반성을 하게
됐다.
<뉴스앤조이>가 지적했듯이 '386 세대'에 대한 얘기나 '큰 교회
작은 교회를 비교'하는 얘기에서 성공주의를 지향한다는 인상을 풍기지 않는가?
미스다.
쓸데없이 그런 예화 안해도 설교가 되는데. 실수가 많다. 그런 걸 통해서 그렇게 하면 안되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단순히 미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제와 무관한 예가 아니라, 설교의 뿌리와
아주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설교의 배경이다. 설교를 할 때
교인들의 상황이 그랬다. 목회적 치유다. 어떨 때는 목회자가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할 때도 있다. 교회 안에서 목회자가 양떼를 바라보면서 하는
설교다. 그런 설교 하나 뽑아 놓고 얘기하면 얼마든지 축복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런 설교 있다. 인정한다. 그러나 목회자이기 때문에
이후에라도 그런 설교 할 거 같다. 그걸 뭐라고 얘기하면 할 말이 없다.
김선호씨의 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잘 읽지 않았다.
왜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읽지 않는가?
신경이 쓰여서 설교 준비를
못한다. 강심장이 아니다. 잔상이 남아서 설교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토요일 같은 때는 교역자들한테 교인들의 나쁜 사정 얘기도 안 들으려고
한다.
강한 군사를 자주 얘기하는데, 이런 문제에 대해서 좀 더 강해져야 할 거 같다.
토요일 설교 준비를 한다 해도 그런 얘기들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로 강해져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의 얘기가 불편할 수 있겠지만,
좀 더 진지하고 성의있게 읽는다면 그것이 설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김선호씨는 이성규 기자의 글을 해방신학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한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해방신학자는 아닌 거 같으나 그쪽 이론에 상당히
심취하고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은 받았다. 성경이 출애굽기부터 시작됐다고 하는 건 문서설을 믿는 거다. 그건 아니다.
창세기부터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말씀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가르치는 학교 많지 않은가. 총신 합신 고신 정도 빼놓고 다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가.
신학적인 배경 차이 아닌가. 하나님의 축자영감 믿는데, 그 사람의 시각은 그것이 아니고 신학적인 차이기 때문에 그걸 뭐 어떻게 하겠나.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면 다 문제가 되는 거 아닌가. 개혁주의에 대해 반감이 있는 거 같다. 그리고 사회복음적인 냄새가 난다. 가난하고 눌린 사람,
80년대에 다 들었던 얘기 아닌가. 생소한 얘기 아니다. 그런데 구속의 우선순위는 죄사함이고 그쪽의 구속은 펼쳐나가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거라고 생각한다.
글쓴이에 대한 커밍아웃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공개적인 토론에는 응할 의향이 있는가?
글을 읽어보면 어떤 신학을 가지고 있는지
뻔한 거 아닌가. 말씀은 선포지 토론이나 논쟁은 아니다. 얻는 게 없다. 감정만 상할 뿐이지.
전병욱 목사는
<뉴스앤조이>에 대한 나름대로 견해를 5분 정도 밝혔다. 가령 "따뜻한 얘기가 많으면 좋겠다" "목회자들을 끌어들이려면 설교 자료가
많아야 된다" "비판을 위한 비판 글도 있다" 등등. 몇몇 특정 기사를 예로 들기도 했다. '광야교회 이야기'나 '스포츠투데이 이야기' 같은
것. 자주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비교적 상세히 관찰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성규 기자의 글 중에서 기분 나쁜 표현, 가령 "목사가 할
말인가" 하는 대목들도 기억하고 있었다.
전병욱 목사는 "웬만하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있으려고 했으나, 생각보다 길어지고,
목회가 힘들어졌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다. "강심장이 아니라서 설교를 준비하는데 도움이 안되기 때문에 <뉴스앤조이>를 잘 보지
않는다"고도 했다.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수많은 목숨이 사라졌을 때도, "이 정도면 별로 많이 무너진 거 아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전진해야 한다"고 명령하던 야전사령관의 대답치고는 너무나도 나약해 보였다.
최근 낸 <153>에 대한 얘기다. 갓피플 사이트에서 <153> 서평에도 누군가 언급했는데, 인용
정도가 아니라 표절이라고 보여지는 부분이 상당히 있다.
설교에 있어서 그런 것이 있을
거다. 나 뿐 아니라 다른 목회자들도 그럴 것이다. 그런 것이 한국사회의 문제인데, <153> 뿐만 아니라 모든 설교가 그렇지만,
설교는 교인들을 대상으로 먹이는 거다. 95년인가 96년 했던 설교다. 요한복음에 대한 텍스트를 15권 정도 보고 했다. 설교에서 표절이라고
하는 건 좀 그렇고, 인용이 맞겠다. 예를 들어 좋은 내용이 있으면 빨려들어가서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사람들 것 본 건 분명하다. 혼자
계시받은 것도 아니고. 우리 정황에 맞게 했다. 이제는 각주를 써서 해야 할 거 같다. 현재로서는 당시 자료를 찾을 수 없고, 다음에 책 낼
때는 그 작업을 하려고 한다. 출처를 밝히는 것이 문화로 자리잡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경험담을 자신의 경험담인 것처럼 한 것은 모르는가?
그런 게 있었나? 모르겠다. 그의
경험담인데 똑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을 때 그렇게 표현할 수는 있었겠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한 구절 한 구절 얘기한다고 하면 할 말 없다.
어떤 경우는 내 것을 베낀다고도 하더라. 내가 봤다고 하는 설교집을 보면 그 사람들도 또 베꼈더라. 스펄존이나 로이드 존스 등 거장들의 글이
원류인 경우가 많다. 그걸 상황에 맞게 맞추는 거고. 설교는 이해해야 한다. 책을 낼 때도 그걸 보고 인용하라고 내는 거 아닌가. 그런 걸
표절이라고 얘기하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설교는 잘 먹이면 되는 거지 그거 베끼는 거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할 건 없다고 생각하고,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젊은 목사가 독창적으로 했겠는가. 책 보고 했겠지. 선교지를 다녀왔다든지 했을 때는 토요일 오후 설교 준비할 때 여러 사람
것을 참고하지 못하고 한 사람 것을 많이 참고해서 거의 같다고 할 정도의 설교를 하기도 한다. 교인에게도 얘기한다. 뭐 그런 걸
비난한다면….
설교할 때 책 내용을 다르게 해석해 인용한 것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있었다.
책 내용을 잘 못 이해한 거다. 설교 한편 하는데 그걸 다 읽고 그러지는 않지
않은가. 이해한대로 이해해서 설교하는 거 아닌가. 날 너무 위대하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싶다.
다독을 자랑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문제 아닌가? 다독이 아니라 정독이 돼야 하지 않을까. 잘못된 예화를 해서 설교 자체의
본질이 완전히 신뢰를 잃을 수 있지 않는가? 책을 무진장 읽는다고 얘기하지만 내 판단으로는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이해가
안된다.
한 사람의 한계다. 한계를 넘는 것을 요구하니까 감당 못한다. 그 부분에 대한
비판보다는 차라리 정독 잘하는 사람을 소개해주면 좋겠다. '아니다' 그러지 말고 '누구처럼 하라' 이렇게 해야지 의미가 있는 거 아닌가. 다독
맞다. 정독 아니다. 하나님 주신 은사다. 하지만 다독의 강점도 있지 않은가.
책이 계속
나오는데, 이미 전병욱이라는 존재가 상품화된 것 아닌가 싶다. 몇 년 전 설교였던 요한복음을 냈다면 다음에 어떤 책을 낼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이 나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성규 기자의 비판 내용이 반복된다. 왜 그런가. 설교 내용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런 책을 계속
낸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장사 아닌가?
복음 자체가 반복 아닌가. 설교가 무슨 해
아래 새 것이 있나. 십자가 얘기, 구속 얘긴데. 사상서도 아니고 설교집인데. 설교가 매번 다를 수 있나. 설교 그 자체의 한계 아닌가. 표절
얘기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야단만 치지 말고 다르게 설교하는 사람을 소개시켜 달라. 잘못된 게 있으면 고치면
된다.
그동안 아무런 얘기도 없었다. 이런 얘기 처음 하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고치면 된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련의 작업은 전병욱 목사 개인 뿐 아니라 목회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도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풍토는
고쳐야 하는 거 아닌가.
나에게 중요한 건 현장이다. 삼일교회가 중요하다. 한국교회를
대상으로 뛴 것도 아니고, 뛰다보니까 최근 들어 영향력이 좀 있게 된 것이고, 그것도 좀 과대평가인 것 같다. 지금 와서 지도자인 양 하는데
내가 무슨 지도자인가. 젊은이들에게 그렇다는 것인데, 다만 내 소신과 확신을 얘기할 뿐이고, 지금도 배울 맘
있다.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 대한 얘기다. 김혜정씨를
아는가?
모른다.
그 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코멘트 안했으면 좋겠다. 해봤자 손해인 거
같고.
해명할 의향이 전혀 없는가?
해명이 아니고 언급 자체를... 우리 교인들한테도 한번 물어보려고 한다. 더 이상 얘기하지 말자. 목회자한테 도움이
안되는 거 같고. 그거는 아예 다 빼달라, 질문 자체를.
이거는 중요한 얘기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한편으로 공인이고 한편으로 개인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 부분에 대해서는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공인으로서
분명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교회 목회자의 가장 큰 약점 중에 하나가 이성문제라고 생각한다.
더 얘기할 가치도 없다.
그런 사실
없나?
삼일교회 교인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안마 같은 거….
언급할수록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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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의
앞으로 계획을 밝힙니다.
① 전병욱 목사 인터뷰를 논평합니다.
② 잠시 중단됐던 <새벽무릎> 3번이
연재됩니다.(마지막회)
③ <153>에 대한 비평이 이어집니다.(3회)
④ 김선호씨께서 지상토론을 원하신다면
계속됩니다.
⑤ 한국교회의 본질을 회복하자는 목표로 시작된 설교 비평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댈 |
,,,  |
() [200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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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필수 |
너무 심한 질문들...  |
() [200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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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한 사람은 하나님인가? 너무
심하다...
불꽃 같은 눈동자로 인생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질문한 사람의 어렸을때 부터 하나 하나 파헤친다면,
당신은 대중앞에 온전히 설수 있는가?
순수성을 잃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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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준 |
서로를 감싸안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아쉽습니다.  |
() [2002-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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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비판은 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관심과 애정이 없이는 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약이 지나치면 그만한 독이 없을 수 있음도 조심스레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크리스찬 커뮤니티에서, 그래도 전병욱 목사님 만한 '인재'가 흔치는 않습니다. 혹 부족함이 느껴졌다손
치더라도, 넓은 마음 으로 아끼고 합심하여 더욱 귀하게 세우는 넉넉한 마음들을 보여줄 수 있었다면, 혹
'옳은' 이야기들로 주로 비판만 하는 것보다는 얼마나 더 좋고 아름다왔을까요..
열 개
가운데 누군가가 아홉을 이루었다면, 나머지 하나를 마저 이룰 수 있도록 독려하되, 이미 이룬 아홉에 대한 충분한
appreciation 또한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재를 소중히 여길 줄 모르던 사람이 그 자신 언젠가
인재의 자리에 섰을 때에 앞서 그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겪었던 '애정없는 비판'이라는 풍파에 똑같은
모습으로 시달리게 된다면 그 얼마나 슬픈 일이었음을 뒤늦게 생각하게 될까요?
서로를
감싸안고 귀하게 감사하게 여길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의 전통이 참으로 아쉬운
이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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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섭 |
너무 공격적인 질문들...  |
() [200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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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자체가 너무 공격적이다. 질문이아닌 심문하는듯하다. 목회자에게 완벽을 요구하는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이버 언론의 폭력이다. 전병욱은 책쓰는 사람이 아니라 목회자다. 한 사람의 목사를 끌어내려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우리나라 목사를 한명씩 조사해서 잘잘못을 따지려고 그러는가.
전병욱목사의 말대로 비판은 반성과 발전의
기회를 제공한다. 다만 그것에 악의가 담겨져있지 않다면 말이다. 그런데 여기 올린 글들은 순수를 넘어선 언어공격의
수준이다.
뉴스엔조이는 칼을 뽑았으니 끝장을 내 승리를 얻으려는것 같은데... 싸움의 승리자는 없다. 차라리 싸움을 피한
전병욱목사의
승리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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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신자 |
목사는 안마 받으면 않되나?  |
() [200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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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문제가 없냐는 질문에서
안마이야기를 하는 기자의 의도는
무엇인지요?
기자분은 안마 받은 적 없습니까?
만약 받았다면 죽을 죄를 지은 건가요?
유치합니다. 저 전병욱목사 편
아닙니다.
그렇다고 뉴스앤조이편도 아닙니다.
그냥 읽다가 질문이 유치해 지는 것 같아서
이렇게
쓰네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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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 |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
() [200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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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은 기독교 안에도 존재해서는 안된다.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기독교는 강자만의
종교가 아니기에, 또 평소 전 목사의 메시지에 크게 공감하지 않고 있었기에 뉴스 엔 조이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아울러 지혜로운
교인이라면 무분별한 옹호나 비판보다는 되돌아봄과 겸손의 태도를 지녀야 할 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많은 이들에게 영향를 미치는 사람일수록
그의 사람됨과 메시지가 미치는 파급효과는 큰 것이다. 이 일은 한국 교회 안의 새로운 시도요, 용기로서 크게 기억될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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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현 |
뉴스엔조이의 선정주의에 신물이 납니다  |
() [200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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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사이트에 사람들이 들어와 보게 된것은 목회 세습문제와 함께 청년들 층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전병욱 목사님을 물고 늘어지면서 부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기자는 전병욱 목사님의 인터뷰를 통해 아직도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만 화해하고 싶어하는 목사님의 드러나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달리고
계시는군요. 도대체 이 뉴스앤 조이가 스포츠 투데이와 다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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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옥 |
자세히 모르겠지만 제 생각은  |
() [200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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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쩌다가 서울에 올라가면 가까이 있어서 삼일교회에 출석했습니다. 기자분 언급처럼 전목사님의
설교에서 그런 내용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저는 기자분이 본 것과는 다르게 느껴서 제가 느끼 바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설교는 먼저 들을 대상을 고려해서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본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을
겁니다. 예수님의 설교도 모순되는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누구를 향한 설교인가를 생각해보면 모순점들이 해결될 수 있고,
혹은 아직도 모순인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저는 예배 자체의 분위기와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삼일 교회의 예배는
살아있는 예배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무엇보다 찬양과 기도와 말씀을 들을 때 영혼을 울리는 감동이 있는 예배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모든 한국
교회가 이렇게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대부분 젊은이가 많은 삼일교회 형편에서의 설교를 다른 큰 교회의 설교와 비교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면을 통해서 보거나 테이프로 듣는 설교와 예배를 통해서 듣는 설교는 느낌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현장에서 예배에 참석하며 들은 다음에 비평을 했더라면 더욱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2. 목회자도 인간입니다. 모태 신앙으로
저도 성경을 남보다 많이 읽었고 신앙 서적도 많이 읽고 있는 편이라 왠만한 초보 목사님들과 토론해도 지지 않을만큼은 된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도 인정하고 있는 편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많은 분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누구나 설교에 잘못된 인용(심지어 성경 본문까지)과 해석에다가 전혀
엉뚱한 예화가 한두가지는 들어갑니다. 그런 모두를 책잡으면 한국 교회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목회자가 몇 명이나 될까요? 아직은 전병욱
목사님 40전이고, 젊은 축에 속합니다. 그러면서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성공한 목회자 축에 속하며 많이 불려다니는 강사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독단도 있고, 실수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제가 몇번 참석해본 삼일 교회 예배에서 그래도 아직은 전목사님이 변화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목회자라는 점에 많은 격려를 보내며 앞으로의 성장에 기대를 걸어봅니다. 한국 교회의 이상한 풍토 중 하나는 갑자기 성장하는 교회에
대한 비판과 질시가 유독 심하다는 것입니다. 은혜는 체험하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경험입니다. 내가 겪지 않았다고 해서 무조건
잘못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나와 다르다고 해서 비판만 한다면 어느 누구도 성장할 수 없을 겁니다. 좀 다른 이야기같겠지만 루터나 캘빈이
종교 개혁을 할 때도 얼마나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겠습니까. 현재의 상황에서 생기는 문제점보다는(아이들도 갑자기 키가 클 때는 성장통이라는 걸
겪는다는데 갑자기 성장하는 교회에는 문제점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좀더 기다리며 적응하고 제대로 성숙하는 모습을 기대하며 그 성숙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모두(목사님이나 그 글을 쓰시는 분이나, 그것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바울의 성숙한 모습을 한국 교회에
기대한다면 욕심일까요? 나는 고기를 먹을 수 있지만 나보다 약한 사람 때문에 고기를 평생 먹지않겠다는 그런 고백을 할 수 있는 헌신과 사라으이
수준 말입니다. 기자분께서 조금이라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더라면, 한번이라도 더 기도하며 그 글을 읽고 마음을 상할 사람을 헤아려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3. 물질적, 양적 팽창만을 추구한다구요? 제가 본 삼일 교회의 모습은(실제적인 모습까지는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비판하는 글처럼 그렇게 양적 팽창과 물질을 강조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한국 교회라면 교인수가 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교회 건축입니다. 그러나 삼일 교회는 건물보다는 사람에게 투자하는 교회입니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능력을
강조하는 진짜 속이유를 못헤아리는 것 같아 답답하군요. 대부분의 성도들이 참으로 잘못된 것 중 하나가 복권 기도처럼 노력하지 않고 얻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복권 기도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많이 사용되는 예화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제가 알고 예화의 뜻은 복권 당첨을 위해
기도하라는 뜻이 아니라 복권 당첨을 위해 기도한다면 최소한의 노력으로 복권을 산 후에 기도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복권을 사는 것이
능력이라는 것이지요. 비전을 설명하며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서는 선교에 필요한 능력을
길러야겠지요.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역사를 알고, 언어를 익히는 최소한의 능력 말입니다. 그것이 복권이라도 사고서 기도하는 태도입니다.
복권은 잘못된 예화를 사용한 것 뿐이지 그렇게 비약해서 생각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교직에
20년 가까이 몸담고 있다보니 학생들에게 훈화할 때 지적하신 것처럼 전혀 상황과 맞지 않는 예화를 끌어 들일 때가 종종있기 때문에 목사님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삼일 교회는 선교에 직접 나서는 교회입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돈만 내고 마는 선교를 하지만 삼일
교회는 방학 때마다 대만에 가서 직접 선교를 하고 옵니다. 그 비용은 모두 각자 부담인 듯합니다. 헌금에 대한 강조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헌금을 강조하면 마치 물질 만능주의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헌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최소한으로 요구하시는 것이며 또한 헌금은 나 자신에게는 아무 것도 내 것이 아니라는 고백입니다. 또한 헌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통로의 하나입니다. 만약 헌금을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며 십자가의 헌신의 의미조차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헌금할 것입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한국 교회에서
회개와 헌금에 대해 설교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약 1년정도 전목사님의 설교를 한달에
한번정도씩 들으면서 목사님께서 어떻게 변하고 계시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설교에 대해, 태도에 대해 나름대로 반성하며 성숙하는 모습이
매일 듣는 경우에는 잘 모를 수 있는 것을 가끔씩 듣기 때문에 더 잘 느낄 수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약간은 독단적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그
정도의 고집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인데 인정해 줄 수 없을까요? 그보다 더 심한 아집을 가진 개척 교회나 작은 교회 목사님도 많이 보았고,
한국에서 큰 교회 목사님치고 그 정도의 비판을 안 받은 목사님이 어디 있나요? 단지 옛날에는 통신 수단이 발달되지 못해서 반응이 더디었을 뿐이지
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교회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두서없는 이야기들, 저는 신학적인 입장에서 보다는
제 신앙 체험적인 면에서 적어 보았습니다. 제가 바라기는 신학적으로 정말 심각한 이단적인 요소가 없다면 사람이니까 실수하겠거니 하고 보았으면
합니다. 베드로도 공회에서 엄청난 실수를 했고, 성경의 위대한 인물치고 실수 없는 사람이 누가 있었습니까? 사실 다른 사람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람이 더욱 문제가 많은 경우가 많더군요. 그러니 서로 덮어주며, 서로 마음 아파하며,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한국 교회, 그리스도의 지체인 한
교회이기를
기도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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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재 |
한심한 기자양반......  |
() [200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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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본질을 회복하자는 목표로 시작된 설교 비평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렇게 글을 올리셨더군요.....쩝 당신부터 기독교인의 본질을 회복하는게 더 나을듯
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