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삶

(펌) 故 최동원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ToBeIsToChange 2011. 9. 18. 08:54

 

 

 

 

 

 

최동원 ... 그는 1991년 지방자치 선거에서

부산시의원에 도전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부산에서 당선되려면

당시의 인지도나 지역감정 등 그런 것으로 본다면
당연히 3당 야합 합당 민자당으로 나왔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3당 합당을 거부하고

노무현, 김정길, 이철 의원 등이 잔류해 만든  

'꼬마 민주당'으로 출마를 합니다.

슈퍼스타인 그의 명성으로 민자당 출마가 가능했지만

당시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따논 당상 이라는 민자당의 공천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김영삼  의 공천을 받아서 나왔다면

아마 지금쯤 부산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성장했겠지요  ...


1991년 6월 7일자 동아일보 인터뷰 를 보면 그는 

 

 "기성 정치인들이 꿈과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만은 꼭 새정치를 이뤄보고 싶다 ,

힘없고 돈없고 빽없는 사람을 위해 일하겠다"

고 했답니다  

즘 안철수 님이 말하는 내용인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최동원 그는 1988년 에도

 나는 이렇게 살아도 후배들이 이렇게 대우받아선 안된다며

선수협의회를 결성을 하고자 합니다


그는 당시 1억원의 연봉을 받는 선수였기에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라면

굳이 선수협을 결성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어려운 동료들을 돕고 싶다고 했습니다

 (최동원은 그후 구단들의 보복을 받고 방출되고 은퇴까지 합니다)


선수협 결성에 앞장섰던 그는

그 해 부산일보 파업 현장에 유니폼을 입고 찾아가

격려금 100만 원을 쾌척하기도 하지요


경남고 동문회가 조직적으로 최동원을 만류했고

안기부 공작설이 나올 정도였지만 최동원은

'민주자치의 선발투수, 건강한 사회를 향한 새 정치의 강속구'

라는 최동원스러운 슬로건을 내걸고 선거에 뛰어듭니다

그는 롯데 자이언츠 구단 주식의 일정부분을 시민 공모주로 바꿔

시민의 구단으로 재탄생 시킨다는 급진적 공약을 제시했고

유세장에선

"YS와는 경남고 선후배사이지만

대선배의 3당야합 부도덕성을 선거로 심판받기 위해 출마했다"

고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 부산 갈매기 레전드는 패하고 맙니다.
시장도 아니고 구청장도 아니고 시의원 선거에서 말입니다.

1991년 부산 서구에 꼬마 민주당 시의원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최동원 은 이렇게 말합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며 독재정권에 저항하던 야당 생활을 하루 아침에 청산하신 당신은 대통령·수상 자리와 찌든 민생, 갈곳 없는 민심을 맞바꾸려 하십니까?”.

 


이후도 2002년 당시 노무현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하였고   TV예능프로 패널, 의류사업 등  야구판 밖을 전전하던 그는

연고도 없는 대전 한화의 코치 유니폼을 잠깐 입었을 뿐
부산으로 돌아오진 못했고 

53세의 일기로 불꽃같은 삶을 마무리지었습니다


최동원의 경남고 동기동창인  이호철 전 민정수석은

"(최동원 별세) 소식 듣고 술 많이 먹었다"면서

"잘 안 알려져 있지만 동원이가 3당 합당 이후 전대협 집회에 참석한 적도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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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자신의 투구 처럼 ... 직구같은 인생을 사셨던 분이셨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펌글) 출처 불분명 -